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침반 Jun 21. 2021

엔트로피

구조와 개인, 그 사이에서 (2019.02.25)

2019.03.24


사회과학에서 어떠한 현상을 설명할 때 통용되는 두 개의 대조적인 개념이 있다. 바로 “structure”(구조)와 “agency”(행위성)이다.


전자는 제도, 법, 권력의 차이, 경제력의 차이와 같은 객관적인 요인을 지칭한다. 때문에 비교적 쉽게 이론화가 가능하고, 이론을 토대로 가설을 세워서 “조건 A가 성립하면 결과 B가 일어나고, A가 성립하지 않으면 C가 일어난다”는 식의 예측을 할 수 있다. 반면에 후자는 근본적으로 예측이 불가능한 사람의 자유의지, 그리고 그 의지에서 비롯되는 행위를 가리킨다. 예를 들면 국제관계학에서 지도자의 개인적 특성이 정책 결정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이를 체계적인 이론으로 정립하기는 어렵다. 


인류 문명의 역사를 무질서에서 질서를 창조하기 위한, 그리고 그 질서로 무질서를 최대한 통제하기 위한 끊임없는 투쟁의 역사로 볼 수도 있다. 정치 분야에서는 최고 권력자를 공평하고 주기적인 선거로 교체하는 자유민주주의적 헌법을 만들어서 공권력이 행사되는 방식을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통제했다. 다르게 말하면 구조적인 틀을 확립함으로써 특정 지도자의 특성이 정치에 끼칠 수 있는 영향을 제한한 것이다. 홉스가 말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즉 철저한 무질서의 상태를 방지할 수 있는 제도가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노력도 결국에는 열역학 제2법칙의 비극을 넘어서지 못한다.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한다. 질서를 회복하고 유지하기 위한 모든 노력은 결국 그보다 더한 무질서의 흐름에 휩쓸린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역설이 존재한다. 구조와 질서를 창조하기 위한 모든 노력은 무질서 속에서 시작된다. “만인은 평등하다”라고 주장한 미국의 독립선언도, 프랑스 혁명이 지향하는 가치를 담은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도 논리적으로 예측이 가능한 법칙에 따라 탄생한 문서라고 보기 힘들다. 소련의 붕괴와 아랍의 봄 같은 대변혁, 또는 사회적인 요구가 분출되는 현상을 어떤 필연적인 결과로 해석할 수는 없다.


비극이 발생했을 때 시스템과 매뉴얼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세월호 침몰 사고는 모두에게 “도대체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라는 질문을 지금도 묻고 있다. 그리고 김용균 군의 안타까운 죽음이 일으킨 반향으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화했다. 마찬가지로 임세원 교수의 어처구니없는 죽음 이후에 안전한 진료환경을 제도적으로 마련하기 위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엔트로피를 극복할 수는 없을지라도 모든 희망을 포기할 수는 없다. 중앙응급의료센터 윤한덕 센터장이 세상을 떠난 후에 쓰인 한 글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구조가 개인을 만들고, 개인이 다시 구조를 바꾸며, 그렇게 변용된 구조가 다시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연쇄 사슬. 개혁은 개인과 구조를 모두 포함한 어렵고 지루하며 비효율적인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 구조가 대상이고 목표라고 했지만 애도하는 우리 개인들의 다짐과 결심은 바로 이 지점에서 만난다. 지치지 않고, 더 지혜롭게, 구조를 개혁하는 데 도움이 되자는 것. 구조를 바꾸어 더는 잘못된 구조의 희생자가 없도록, 옹호하고 촉구하며 압박하자는 것.

구조 안에서 구조 밖을 지향하는 것 빼고는 개인의 의무를 찾기 어렵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노비스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