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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침반 Jul 06. 2021

남는 건 사진뿐일까

2019.02.13 / 2021.07.05

포인트 레예스의 등대 (2021.07.05)


"사진 하나라도 더 찍자. 남는 건 사진뿐이야."


여행을 갔을 때도,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이런 말을 하며 사진으로 기억을 남긴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라는 이소라의 가사처럼 여러 사람이 공유한 경험도 각자의 기억 속에는 다르게 남는다. 하지만 사진은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순간을 포착해서 영원히 간직할 수 있게 해 준다.


예전에는 빛에 노출된 필름을 이용해서 사진을 인화했지만, 이제는 픽셀마다 부여된 고유의 수치 3개를 수학적으로 압축한 파일로 사진을 저장한다. '상보성 금속 산화막 반도체'(CMOS)라는 장치로 저장한 정보를 '이산 코사인 변환'(JPEG 압축 방식)처럼 차갑게만 들리는 수학적 도구를 이용해서 만든 수많은 숫자의 조합을 시각화한 사진이 아련하고 따뜻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은 작은 기적이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사람이 서로를 대하고 기억하는 방식도 변한다.


이제는 사진관에 가서 가족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몇 세기 전에는 큰 비용과 시간을 치르면서 화가를 고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사진기와 렌즈의 품질을 면밀히 살피는 애호가들이 있지만, 캐논이나 니콘의 장단점에 대한 열띤 토론은 렘브란트를 고용할 건지, 베르메르에게 연락을 할 건지 고민하는 17세기의 가상의 대화와는 다르게 다가온다.) 그리고 초상화는 벽에만 걸었지만, 가족사진은 거실 벽뿐만 아니라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설정하고 메신저로 순식간에 전송할 수 있다.


사진뿐일까. 지금은 인터넷만 연결되면 지구 반대편에 있는 누군가와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들으며 실시간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예전에는 글을 배울 기회도 흔치 않았고, 글을 아는 사람도 손수 쓴 편지가 무사히 전달되었는지 확인할 방법도 없었다. 몇 개월, 혹은 몇 년 동안 답신을 하염없이 기다렸던 경험도 적지 않았을 터. 카톡 대화방에서 문자 옆에 사라지지 않는 "1"을 보며 느끼는 조급함과는 차원이 다른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기술이 지향하는 최상의 목표는 인간의 편의다. 하지만 더욱 편리해지면서 서로에게 소홀해지는 건 아닐까. 아무 때나 보고, 아무 때나 얘기를 할 수 있기에 얼굴을 맞대고 삶을 나누는 순간의 소중함을 서서히 잊어가는 것만 같다. 더욱 가까워질 수 있는 수단이 늘어가기 때문에 더욱 멀어지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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