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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침반 Sep 12. 2021

쌓아감

2021.09.10

집 밖에서 올려다본 저녁 하늘 (2021.09.09)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다.


예전에 한 선배가 알려준 드라마 ‘송곳’ 중의 대사다.


지난 보름 사이에 학교에 새로 도착한 포닥, 신입생,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뒤늦게 학교에 처음 온 2년 차 ‘신입생’ 분들을 몇몇 만날 기회가 있었다. 학교에 정착하는 과정을 함께 하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5년 전 이맘때쯤 학교에 처음 도착했을 때 바라봤던 세상의 풍경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기억을 더듬어봐도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는 사람 몇 없는 동네에 도착해서 마주한 여러 도전들과 막연한 불안함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학과에서 진행한 3주짜리 수학 예습 과정에 자신을 던졌던 기억만 남아있다. 집합론, 미적분, 확률론 문제에만 집중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학교에 새로 오신 분들에게 라이드를 제공하고, 각종 생활 정보를 알려주면서 도움을 줄 수도 있다. 그리고 관심 분야가 비슷하다면 수업과 연구, 진로에 대한 조언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분야와 배경이 비슷한 분이라도 간극이 느껴질 때가 있다. 서 있는 곳이 바뀌니 보이는 풍경도 다른 법이다. 5년 전 자신의 모습도 잘 떠오르지 않는데, 그분들이 마주한 상황과 고민에 과연 얼마나 공감해 줄 수 있을까.


그리고 각자 어떤 인생의 경로를 거쳐서 여기까지 왔는지, 지금 어떤 희망과 걱정을 안고 있는지 그 전부를 알 수는 없다. 사람이 사는 모습은 어디나 비슷하다고 하지만, 동시에 어느 두 인생 사이의 거리가 생각보다 훨씬 먼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에서 “서로를 격려하고 쌓아 올리라”라고 말한다 (5장 11절). 물론 교회 공동체를 향한 이야기지만,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할 수도 있다. 홀로 걸어가는 삶의 여정을 그대로 앞서 가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길에서 서로 마주쳤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서로를 격려하며 쌓아 올리는 것일 수도 있다.


아무리 짧더라도 함께할 수 있는 시간 동안 서로의 삶에 조금 더 깊이 스며들고, 서로가 서로에게 흔적을 남기는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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