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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침반 Oct 02. 2021

리빙 라이브러리

2021.10.02

2012년 여름, 크로아티아 흐바르 섬에서.


김수정 작가의 <나는 런던에서 사람 책을 읽는다>를 인상 깊게 읽었던 적이 있다. 미리 준비된 도서(사람)목록에서 다양한 배경의 사람을 “빌려서” 대출 시간 30분 동안 대화를 나누는 “리빙 라이브러리”에 참여한 경험을 서술한 책이다. 다시는 만나지 않을 인연이기 때문인지 그 짧은 시간에도 진솔하고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눈 이들이 많았다.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알아가는 걸까. 만약 처음 만나는 누군가에게 자신에 대해서 알릴 시간이 30분만 주어진다면, 어떤 이야기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그 길이가 짧든, 길든 모든 인연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리빙 라이브러리”로 생각한다면 각 인연마다 허락된 대출 시간이 다를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인연 속에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순서대로 나열되고 정교하게 짜인 서사의 전기(傳記)를 전달하지 않는다. 지난달에 다녀온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어떤 때는 갑자기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에 대해서 나누기도 한다. 오랜 친구나 가족이랑 대화를 하다가 처음 듣는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될 때도 있다.


영화 <Fight Club>의 말미에 이런 대사가 등장한다. “You met me at a very strange time in my life.” 오늘 나를 만나는 사람이랑 5년, 10년 전에 나를 만난 사람이 기억하는 나의 모습은 다를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게는 익숙한 자신의 모습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낯설게 다가올 수 있다.


우리 안에 어떤 모습들이 있는지, 추억을 쌓아둔 “낡은 서랍 속의 바다”를 열고 깊이 들여다보면 어떤 이야기들이 그 속에 숨고 있는지 잊고 지낼 때가 많다. 자신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그 경험들을 또 상대방의 이야기에 비춰보며 서로를 알아가는 모든 순간은 결국 자신을 더 알아가는 과정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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