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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침반 Sep 30. 2021

우연과 필연 사이

2019.08.13

일본 홋카이도에서 (2017.08.10)


카오스는 초기조건에 지수함수적으로 민감하다. 초기조건이 눈곱만큼만 바뀌어도 그 효과는 금방 은하계의 크기로 커질 수 있다... <나비효과>는 시간여행을 다룬 영화다. 주인공은 원하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 자꾸 과거로 돌아간다. 과거를 조금 바꾸면 미래가 원하는 대로 되리라는 희망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은 언제나 예기치 못한 파국으로 치닫는다. 초기조건에 민감한 물리계는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김상욱, <떨림과 울림> 102-103쪽


중학교 때 전학을 오면서 새 학기의 첫날에 누구 옆에 앉았는지, 대학교에 도착해서 어떤 친구들과 같은 기숙사에 배정되었는지, 모든 시작의 순간에 있었던 우연찮은 일들을 되돌아보면 '작은 일은 하나도 없다'는 새삼스러운 말이 새롭게 다가온다.


그런 모든 특별했던 날들도 오늘과 다르지 않다. 오늘 내린 여러 결정들도 자신의 궤적을, 주변 사람들의 경로를 미세하게나마 바꿨을 것이다. 무심코 내뱉은 모든 말들도, 아무런 고민 없이 내린 수많은 결정도 불특정 다수에게 어떻게든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다만 가까이 있는 사람일수록 그 파도를 조금 더 크게 느낄 뿐이다.


바로 그렇기에 자신이 홀로 넘어져 있던 순간에 믿고 의지하는 누군가가 건네줬던 위로의 말 한마디의 의미를 느꼈다면, 앞으로 자신이 다른 누군가에게 건네는 말에 예전보다 약간은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지금 누군가를 붙잡아준다는 것은 사실 그 사람을 통해서 미래의 또 다른 누군가를 미리 일으켜 세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연과 필연 사이, 그 알 수 없는 과거와 미래의 찰나 같은 경계에서 우리는 오늘도 모두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를 하나씩 던지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그저 그 돌멩이로 일으킨 물결이 누군가를 집어삼키거나 쓰러트리지 않고, 로버트 케네디가 50여 년 전 아파르트헤이트의 암흑 가운데에서 외쳤던 "희망의 작은 물결"이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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