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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침반 Oct 19. 2021

모닥불

2021.10.18

지하철 역으로 걸어가던 중, 퇴근길에 바라본 스톡홀름 시청 (2013.07.26)


직접 알지는 못했지만 결코 멀지는 않았던 누군가를 잃었던 적이 있다. 몇 년만 늦게 태어났더라면 같은 기숙사 건물에서 얼굴을 보고 밥을 같이 먹으며 밀린 과제를 하러 가기 전에 수다를 떨고 어깨를 토닥이며 서로를 응원했을 수도 있는, 그런 친구였다.


그때부터 다짐을 했었다. 앞으로 이어지는 인연들 중에서는 절대로 다시는 누군가를 잃지는 않겠다고. 잃은 후에야, 곁을 영원히 떠난 후에야 비로소 그 소중함을 알게 되는 어리석은 후회를 조금이라도 만회하고 싶었던 것 같다.


늘 자신의 희망과 걱정과 기대와 불안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기에, 타인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다른 누군가가 처해있는 상황들을, 안고 있는 삶의 무게를 모두 이해하거나 가늠할 수는 없다.


그리고 혼자서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은 교만에 가까운 착각일 수도 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영어 속담도 있지 않은가. 단 한 사람뿐인 경우도 있겠지만, 우리 각자를 지탱하는 안전망은 수많은 사람들이 붙들고 있다.


하지만 어떤 작고 평범해 보이는 말이나 행동, 그 속에 담긴 진심 어린 위로나 격려의 힘을 모르지 않는다. 순간의 진심도, 가벼워 보이는 진심도 여전히 진심이다. 그렇게 하나둘씩 받은 작은 마음들이 쌓여서 누군가에게는 찬 바람이 부는 어두운 날에 따스한 모닥불을 피울 수 있는 장작더미가 될 수도 있다.


한 사람에게라도 그런 장작을 건넬 수 있기를. 적어도 누군가의 짐을 더 무겁게 하는 일은 없기를. 그 다짐을 되새기며 또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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