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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침반 Nov 01. 2021

꽃집

2021.10.31


여주를 조금 지나면 있는 할머니 산소를 가는 길에 잠시 꽃집 밖에 차를 세웠다. 어머니가 꽃을 고르러 들어가 계신 사이에 아버지랑 둘이 차에 앉아 있었다.


앞에 무슨 말을 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처음 듣는 이야기를 꺼내셨다.


막 태어난 어린 강아지들을 갑자기 돌봐야 했던 일이 있었어. 다 어쩔 줄 모르고 있었는데 어떻게 포도당을 구해 오셔서 일일이 먹이면서 강아지들을 모두 살리셨어. 참 수완이 좋으셨지. 큰 일을 하실 수도 있었는데, 지금도 생각하면 아쉬워. 시대도 시대지만 가족이 생각이 조금 더 열려 있었으면 대학교도 가셨을 텐데 말이야.


할머니께서 대학교로 진학하지 않으시고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일하셨다는 이야기를 세상을 떠나신 후에 처음 들었다.


그 교실의 모습이 어땠을지 상상이 될 것만 같다.




직책이 바뀌실 때마다 아버지의 사무실에 구경을 갔었다. 사무실 한쪽에는 하나씩 작은 액자들에 담긴 사진 여러 장이 늘 있었다. 그중에는 한 장의 흑백사진이 있다.


어떤 유치원의 좁은 복도에서 할머니가 막내인 아버지를 업고 환히 웃고 계신, 그리고 그렇게 업힌 아버지는 들뜬 얼굴로 한쪽 팔을 허공에 뻗으면서 카메라를 보시는 사진이다.


그러지 않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싶지만 아버지는 지금도 길거리에서 어린아이를 보면 활짝 웃으신다.


그 마음이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사람을 대하는 방식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결국은 자신의 노력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주 느낀다.


사랑을 받았어야만 사랑을 할 수 있고, 작은 마음이라도 받아 봤어야 누군가에게 그 마음을 건넬 수 있고, 진심 어린 위로의 따뜻함을 알아야 위로를 할 수 있는 건 아닌지.


어릴 때 주말마다 놀러 가면 이제는 너무 작게만 느껴지는 주차장에서 올려다본, 7층 발코니에서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시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모습이 많이 떠오르는 일요일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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