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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침반 Nov 26. 2021

빈대떡

2021.05.12 / 11.25


미국은 추수감사절 연휴다. 추석이랑 가장 비슷한 명절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가족을 보러 집으로 돌아가지만, 일주일이 넘는 출장을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가족과 친척이 거의 모두 한국에 있어서 이번에도 어김없이 미국에서의 집이 되어버린 베이 지역에 남기로 했다.


한국에서 지낼 때도 명절에 서울을 떠난 기억이 없다. 어느새 아흔을 넘기신 할아버지, 이제는 세상을 떠나신 지 10년이 넘게 지난 할머니 모두 평안남도 태생이시다.


냄새는 자주 내 집중력을 무너지게 하거나 뜬금없이 현재의 내 시간을 아주 먼 곳으로 돌려놓기도 한다. 가을이 깊어갈 무렵이면 개천에서 살이 오른 미꾸라지를 잡아 추어탕을 끓이는 냄새를 나는 코 언저리에 놓고 지내곤 했다.

내가 자란 남쪽 지방에는 잘게 썬 방앗잎과 산초 가루를 넣어 추어탕의 맛을 내곤 했다. 그 독특한 냄새는 지금까지 나를 따라다닌다. 가을이 깊어갈 무렵이면 어디에 있든 나는 그 냄새를 그리워했다. 개천 바닥의 흙 속에서 요동치면서 사는, 미꾸라지라는 작고도 힘센 물고기의 살과 방아라는 독하고도 향긋한 냄새가 어우러진 그 물고깃국은, 모든 살아 있는 냄새가 어우러져서 소용돌이를 치다가 불 위에 달구어져 얌전하게 가을 밥상에 올려져 있었다.

--- 허수경, <나는 발굴지에 있었다> 중 "방앗잎, 그리고 해골에게 말 걸기"


허수경 시인의 글을 읽으니 추석이 되면 거실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빈대떡을 부쳐주시던 할머니가 떠오른다. 먹성 좋은 집안의 막내의 막내를 위해서 빈대떡을 무한리필로 접시에 채워주셨다.


거실을 가득 채우던 그 고소하고 눅눅하고 기름진 냄새와 지글거리는 소리가 문득 떠오르는 아침이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와 함께 어느 추어탕 집에 갔다가 사장님이 3대가 같이 식당을 찾아왔다며 사진을 꼭 찍어야 한다고 부랴부랴 카메라를 찾으시던 순간도 생각난다.


우리를 떠받치는 많은 것들은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에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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