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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침반 May 28. 2021

오늘은 좋은 추억

2021.05.08


약 한 달 전, 주일학교 아이들을 위한 야외 부활절 행사를 시작하며 목사님께서 아이들에게 말씀을 전해주시던 중이었다.


“만약 여러분이 정말 사랑하는 엄마나 아빠가 세상을 떠난다면 너무 슬프겠죠. 그럴 때 무엇이 여러분을 다시 기쁘게 할 수 있을까요?”


한 남자아이의 패기 넘치는 대답이 심금을 울렸다.


“짜장면 두 그릇이요!!”


분명 목사님이 생각하시던 대답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나름의 통찰이 있는 대답이었다. 이 또한 그 아이가 생각한 그림은 아니었겠지만, 아무리 슬픈 일을 겪더라도 짜장면 두 그릇을 함께 나눠먹을 누군가가 있다면 큰 위로가 될 것이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것인데 맛있는 음식을 좋은 사람들과 나눠먹을 수 있다면 그보다 감사할 일이 있을까. 그리고 그 와중에 이야기를 나누며 알쓸신잡이 전혀 부럽지 않을 정도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오늘 하루만 되돌아봐도 그렇다. 왜 앞으로 기존 스포츠보다 e-스포츠가 인기를 얻게 될 것 같은지, 6기통 내연기관은 4기통에 비해 어떤 장점이 있는지, 왜 코로나 19 변이가 발생하는 데에는 이론적 상한선이 있는지. 아마도 금방 잊게 되겠지만, 이렇게 주위의 인연들을 통해서 잠시나마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는 것 또한 축복이다.


앞으로도 이 동네에 최대한 오래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유독 많이 드는 하루다. 이제 대학원 5년 차가 되었으니 15년을 넘게 살았던 서울 다음으로 가장 오랜 시간을 팔로알토에서 보낸 셈이다. 하지만 오로지 관성 때문에, 새로운 곳이 두렵기만 때문에 여기에 계속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일은 늘 예상대로 되지 않기에 과한 욕심을 부릴 생각은 없다. 머지않아 새로운 곳에 가게 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또 적응을 하게 될 것이고, 그곳에서도 좋은 인연들이 맺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두려움 가운데서 매일 한 걸음씩 나아갈 뿐이다. 되돌아보면 늘 예상치 못한 길로 왔기에, 그리고 그 길에서 생각지도 못한 많은 것들을 얻었기에 앞으로도 그럴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모든 불확실함 속에서도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하루의 끝에 “오늘은 좋은 추억으로 오래 남을 것 같아”라는 느낌이 든다면, 그것은 오늘 하루를 잘 보냈다는 가장 명확한 증거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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