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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침반 Dec 19. 2021

다른 각도에서 보면

2021.12.18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미러 레이크 (2021.12.11)


누군가에게는, 혹은 어떤 조직이나 공동체에게는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에 삶의 의미를 거의 모두 걸었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능력의 한계로 인해서, 혹은 크고 작은 이유로 여유가 없어서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거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 오면 당황하고 혼란스럽기도 했었다.


그 다짐이 실은 이기적인 강박이었음을 바라본다. 가족이나 각별한 친구 사이와 같은 특수한 관계를 제외한다면,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믿음은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라 근거 없는 교만에 가깝다. 내가 아니어도 결국 시간은 무심히 흐르고 세상은 어떻게든 잘 굴러간다.


그리고 선한 의도로 애써 포장하려 했던 그 다짐을 들여다보니 그 뿌리에는 타인의 인정에 대한 갈급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결과가 좋지 않을 때에도 그동안 들인 시간과 노력에 대한 보상심리가 작동한 것이다. 집착은 욕심으로, 욕심은 또 집착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어린 시절, 세 차례의 대수술을 거치면서 선천성 심장질환을 극복하고 외과의사가 된 신승건 부산 해운대구 보건소 건강증진과장의 고백이다.


내가 남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서는 내가 감사해야 할 일이 되기도 한다. 나는 한때 의사가 환자를 돕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환자 없이는 의사라는 직업 자체가 필요 없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실제로는 의사를 돕는 게 환자라고 할 수도 있다. 얼핏 보아 남에게 베푸는 것처럼 보이는 일도 다른 각도에서 보면 도움을 받는 일이 되는 것이다.

사실, 감사는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다. 감사하는 삶을 통해 자기 자신이 가장 혜택을 보기 때문이다. 남이 나에게 감사하기를 바라기보다는 내가 남에게 감사하면서 사는 게 정신적으로 훨씬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 전자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지만, 후자는 전적으로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남이 결정하는 것보다 내가 주도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많아야 그 인생이 훨씬 즐겁지 않을까.

--- 신승건, <살고 싶어서 더 살리고 싶었다: 외과 의사가 된 어느 심장병 환자의 고백> (위즈덤하우스, 2020), 221-22쪽.


부족한 경험, 능력과 지혜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위해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주어진다는 것 그 자체로 감사한 일이다. 그런 상황이 주어지는 것도, 다른 누군가가 감사함을 표시하는 것도 결코 당연하지 않다.


주어진 인연에, 역할에, 경험에 그저 감사할 일이다. 그 가운데에서 진심을 잃지 않고 주위의 사람들을 대하며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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