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30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 학부 지원생 면접을 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면접을 선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하면 모든 지원생에게 면접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학교 입학 사무처의 방침이라 매해 많은 졸업생이 면접관으로 참여한다.
면접을 할 때마다 마지막 10-15분은 지원생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주게 되어 있다. 대학 생활, 동아리 활동, 혹은 수업 분위기에 대한 질문이 가장 흔하다.
그래서인지 한 학생이 했었던 질문이 기억에 남는다. “이렇게 면접을 하시는 것도 자원해서 하는 것일 텐데, 어떤 이유로 시간을 내서 이 대학을 위해서 인터뷰를 하게 되셨나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질문이라 머뭇거리며 횡설수설하다가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던 기억이 난다. 솔직하게 답했다면 “재밌을 것 같아서” 아니면 “동문회에서 연락이 와서”라고 했겠지만, 아마도 그 학생이 기대했던 것은 그런 종류의 답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제 대학을 졸업한 지 5년이 되어간다. 시간이 지날수록 잊히는 것도 많지만, 더 분명하게 보이는 것들도 있다. 2010년 가을부터 2014년 여름까지의 시간, 그 4년의 의미를 종종 되새겨본다. 사실 어느 환경에 있었더라도 영향을 많이 받았을 나이다. 다른 대학을 다녔어도 비슷한 영향을 받았을지 알 방법은 없지만, 어쩌면 지금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이 어떤 환경에 있는지보다도 주어진 환경에서 어떤 태도로 행동을 하는지가 많은 경우에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환경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4년 동안 주어진 기회를 모두 적극적으로 활용하지도 않았고, 허락된 경험에 충분히 감사해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부족했던 노력에 비해서 과분할 정도로 많은 것을 얻었다.
또 하나의 가족과도 같은 소중한 친구와 선후배, 그리고 세상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 사람을 대하는 자세와 무언가에 대해서 질문을 하고 생각을 하는 습관. 그리고 여전히 말뿐이고 생각뿐이지만, 주어진 기회와 경험에는 책임이 따르며 그 책임에 어떻게든 반응해야 한다는 믿음. 지금도 삶의 중심을 이루는 많은 것들은 그 4년 동안 쌓인듯싶다.
“미국의 4대 대통령이자 헌법과 권리장전을 작성한 제임스 매디슨이 너희의 선배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신기하다는 감정보다는 부담감과 함께 이름 모를 책임감이 더 크게 다가왔던 기억이 난다. 정치학 전공 수업에서 “너희 같은 친구들이 국무부에 가서 이 나라의 외교 정책을 책임져야 한다”라고 신신당부하시는 교수님도 있었다. 그러나 공무원이 되거나 공익단체에 종사할 생각이 없더라도, 학교의 비공식 모토인 “In the Nation’s Service and the Service of Humanity”를 4년 동안 접하면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면접을 하면서 난생처음 만나는 누군가를 30분, 40분 사이에 깊이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거듭할수록 지원생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는 직감도 조금은 생기고, 어떤 질문을 해야 지원생의 인격을 살펴볼 수 있는지에 대한 약간의 요령도 터득하게 된다. 그럼에도 면접 후에 보고서를 작성하고 학생을 평가할 때마다 주저하게 된다. 최종 판단은 입학 사무처의 몫이지만, 면접을 하는 모든 졸업생에게 누군가의 인생에 작지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는 것이다.
입학 사무처에서 졸업생을 위해서 준비하는 참고사항에 나오는 설명이 있다. 졸업생은 지원생의 다른 지원 서류를 볼 수 없기 때문에, 면접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여도 합격을 하지 못하는 학생이 허다하다는 것이다. 단순히 확률적으로만 봐도 면접을 본 거의 모든 학생은 합격 통보를 받지 못한다. 직접 보고서를 작성한 지원생이 후배로 오면 좋겠다는 욕심은 언제나 있지만, 거의 모든 경우에는 그렇지 못하다.
왜 합격할 확률이 높은 학생들만 선별하지 않고 굳이 졸업생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최대한 많은 지원생에게 면접 기회를 제공하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순전히 효율의 관점에서 본다면 합당한 지적이다. 그러나 면접 후 작성된 보고서를 통해서 더 많은 지원생들에 대해서 종합적인 판단을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면접의 주된 목적은 아니지만, 학교의 입장에서는 최대한 많은 지원생에게 면접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어느 정도의 홍보 효과도 얻을 것이다. 면접관에게서 받는 인상이 학생과 학부모에게는 그 학교 전체에 대한 인상으로 남을 수도 있다.
그래도 졸업생 개개인이 왜 시간을 들이면서 면접에 참가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주변의 동문이 어떤 생각과 동기로 참여하는지 자세히 물어본 적은 없다. 소중한 4년의 추억을 선물해준 학교에 대한 감사의 표시일 수도 있고, 본인에게 면접을 볼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에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책임감도 일정 부분 기여를 할 것이다.
처음에는 그런 거창한 생각도 없었고, 그저 재미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었다. 그동안 면접을 한 학생의 수가 많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면접의 의미에 대해서 예전보다는 조금 더 고민을 하게 된다. 지원생이랑 엄청난 나이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니 의미 있는 조언을 해줄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다. 깊은 울림이 되는 이야기를 해줄 내공이 없는 건 당연하다.
어쩌면 처음으로 인생의 거대한 전환점 앞에 서 있고, 수많은 희망과 두려움이 복잡하게 뒤엉키는 긴장의 연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학생에게 무슨 얘기를 해줄 수 있을까. 면접관과 지원생이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이제 곧 떠나려는 길을 아주 조금은 먼저 걸어본 사람의 입장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대학에서의 첫 수업 중에 하나인 미시경제 개론 강의를 학교에서 가장 큰 강당인 McCosh 50에서 들었다. 이 교실로 올라가는 계단의 입구 위에 새겨져 있는 문구가 있다. “Here we were taught by men and gothic towers / Democracy and faith and righteousness / And love of unseen things that do not die.” 1학년 후에도 여러 조용한 저녁에 머리를 비우려 혼자 교정을 산책하면서 이 앞에 서서 문구를 한참 동안 바라봤었던 기억이 난다.
한 시간보다 짧은 시간 동안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긴장한 나머지 어떤 얘기를 나누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학생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이 세 줄의 글에 함축된 모든 것, 4년 동안 얻은 모든 것을 조금이라도 보여주고 전해주고 싶은 희망을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다. 결국에는 다른 대학을 가게 되더라도, 이렇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는 막연한 인상을 남기고 싶다면 지나친 바람일까. 그리고 면접이라는 틀을 넘어서, 그 4년 동안 받은 모든 것을 삶의 구체적인 모습으로 주변 사람들과 조금이나마 나누고 싶다면 지나친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