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침반 Jul 17. 2022

모래 한 알

2022.07.16


“세상 참 좁다.”


한국에서 국제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의 한인 유학생 사회에 속해서 지내다 보니 자주 듣는 말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랑도 한두 다리를 건너면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 사회에서는 평균 3.6 ‘다리’를 건너면 누구나 알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해외로 나온 일부에 속한 사람들을 주로 만나다 보니, 더 좁게 느껴지는 건 주관적인 느낌만은 아닐 것이다.


대부분이 엇비슷한 사회경제적 배경에서 출발하고 자란 사람들이다. 특히 비슷한 시기에 같은 학교를 다녔으면, 그 정서적 유대감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서로 익숙하고, 비슷하고, 편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사람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다만 자신을 둘러싸는 인간관계의 연결망이 시야를 가로막는 성벽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에게 보이는 세상, 피부에 닿는 세상은 대부분 직접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서 그려진다. 만나거나 들어보지 않은 세상은 생소하다. 그래서 상상력과 공감 능력을 넓히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세상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얼마 전, 미국의 독립전쟁과 건국 초기의 역사를 알렉산더 해밀턴의 시각에서 그린 뮤지컬 <해밀턴>의 영상을 볼 기회가 있었다.


이 작품의 말미에 해밀턴과 아론 버가 결투를 벌이는 장면에서 “The World Was Wide Enough”라는 노래가 등장한다. 극 중의 아론 버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며 이렇게 노래한다.


I should’ve known
왜 이제야 알게 된 걸까

The world was wide enough for both Hamilton and me
세상은 해밀턴과 내가 살아갈 만큼 넓었다는 걸

The world was wide enough for both Hamilton and me
우리 둘 다 서 있을 만큼 넓었다는 걸


<해밀턴>에서 그리듯이 건국 초기에는 국가의 형태와 기능에 대한 여러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그럼에도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들은 정치적인 견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인격적으로 존중하기 위해 노력했고, 상호 존중의 기초 위에서 타협을 이루었다. 존 애덤스와 토머스 제퍼슨의 관계가 대표적인 예다.


그래서 해밀턴의 죽음은 미국의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장면 중에 하나로 여겨진다. 삼권분립, 양원제 입법부, 수정헌법 1조-10조로 구성된 권리장전 등 지금도 미국 정치의 근간을 이루는 제도들은 모두 이 시기에 이루어진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다. (물론 분명한 한계도 있었다. 소위 "3/5 타협"은 남부의 노예제도를 용인했고, 노예제도를 둘러싼 갈등은 훗날 남북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어떤 공적인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그 자체로 긍정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상호 존중의 정신을 기반으로 건설적인 논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이 옳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에 휩쓸려서 상대방에 대한 인격적인 공격을 서슴지 않는다면 공론의 장은 서서히 무너진다. 심한 경우에는 정치적인 폭력에 이를 수도 있다.


민주주의는 "인지적 겸손함"에 기초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자신이 보는 것은 언제나 극히 일부다. 반대되는 의견을 듣는 것은 불편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귀를 기울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세상은 생각보다도 훨씬 넓다.




지난 7월 12일, 미국 항공 우주국은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전송한 사진을 공개하며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


이 사진은 모래 한 알을 손에 쥐고 팔을 뻗으면 가려지는 만큼의 하늘을 포착한 것이며, 광활한 우주의 한 편린입니다.


모래 한 알.


영국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가 '순수의 전조'(Auguries of Innocence)에서 "한 알의 모래에서 우주를 보고 / 들판에 핀 한 송이 꽃에서 천국을 본다"라고 했던 표현이 떠올랐다. 이 시적 표현이 과학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천체학에는 문외한이지만, 허블 우주망원경과  우주망원경이 보낸 사진을 대조한 것만 봐도 천체학의  시대가 막을 올렸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할  었다.


모래 한 알처럼 좁아 보이는 세상 속에도 어떤 신비한 우주가 숨어있는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이제야 눈을 처음 뜬 것은 아닌지.



매거진의 이전글 휘발성 지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