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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침반 Aug 20. 2022

샌디에고

2022.08.20

1602년 5월 5일, 스페인 출신의 항해사 세바스찬 비즈카이노는 네 척의 원정대를 이끌고 아카풀코에서 출발한다. 이 원정대의 임무는 캘리포니아 해안을 탐사하는 것이었다.


당시 필리핀에서 멕시코로 향하는 스페인의 무역선은 우선 일본 근해까지 북쪽으로 항해했다. 그 후에는 태평양을 가로질러서 캘리포니아 북부 해안에 다다른 다음,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멕시코 남부 해안의 아카풀코에 정박했다. 이 때문에 스페인은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태평양 횡단 직후에 선박을 정비하고 선원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거점을 찾고 있었다. 비즈카이노는 스페인의 식민지를 통치하는 누에바 에스파냐의 부왕으로부터 캘리포니아 해안에 항구를 세우기 적합한 장소를 찾으라는 임무를 받는다.


6개월 후인 1602년 11월, 비즈카이노가 이끄는 원정대는 한 자연 항구에 정박한다. 원주민 부족인 쿠메야이 부족이 거주하던 지역이었다. 세 명의 수도사가 원정대와 동행하고 있었고, 육지에 상륙한 원정대는 11월 12일에 미사를 올린다. 이 날은 성 디에고의 축일이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비즈카이노는 이 항구를 "샌디에고 (San Diego)"라고 명명한다.





여전히 전략적 요충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샌디에고의 항구에는 미국의 최장수 항공모함인 USS 미드웨이가 정박해 있다. 2차 대전 종전 직후에 취역한 미드웨이함은 47년 후인 1992년에 퇴역했고,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2004년에 대중에게 전면 개방되었다.


지난 7월 말, 휴가를 내고 샌디에고를 방문하면서 미드웨이함 박물관에 들렸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노란 셔츠를 입고 계신 어르신들을 볼 수 있다. 미드웨이함에서 직접 복무했던 경험을 토대로 도슨트 역할을 하는 분들이시다. (복무 기간은 3년이었는데 도슨트로는 어느새 10년 넘게 승선을 하셨다는 분도 계셨다.) 갑판 위에서 함재기 이착륙 과정을 생생하게 설명하시던 분들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박물관의 거의 모든 구역은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지만, 단 하나의 예외가 있다. 바로 함교다. 가파른 계단과 비좁은 공간 때문에 한 번에 15명 정도의 관람객만 입장할 수 있다. 함교에 있는 도슨트로부터 항해술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전함의 사령탑인 함교에서는 함장과 항해사가 전함의 속도와 방향을 통제한다. 미드웨이함은 전자 항법장치가 도입되기 전인 1945년에 취역했기 때문에 GPS를 활용해서 위치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육지 인근을 항해할 때는 세 명의 장교가 주요 지형지물로부터의 거리를 직접 측정했다고 한다. 이 정보를 사용해서 항해 지도 위에 컴퍼스로 거리를 표시하면 3개의 곡선이 교차하는 지점을 찾을 수 있다. 이렇게 2분마다 한 번씩 측정을 반복하면 전함이 계획된 항로를 따라가는지 비교적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바다 한가운데로 나아가면 더 이상 지형지물에 의존할 수 없게 된다. 일단 위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육분의(sextant)를 사용할 수 있다. 육분의는 태양, 북극성 등 천체와 수평선 사이의 각도를 측정하는 기구다. 천체를 이용한 항해술은 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기원전 3000년 무렵에도 페니키아의 상인들이 지중해를 누빌 수 있던 이유다.)


경도를 측정하는 방법은 이에 비해 비교적 최근에 발명되었다. 영국 의회는 1714년에 경도를 정확히 측정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사람에게 상금을 수여하는 경도법(Longitude Act)을 제정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군사적인 측면에서도 정교한 항해술은 매우 중요했다. 하지만 경도를 측정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송병건 교수의 설명이다.


뉴턴을 포함한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천체의 움직임에 해답의 열쇠가 있을 것이라고 봤다. 별과 달의 상대적 위치 변화가 단서가 될 것이라는 추측이었다. 달이 지나가는 길에 있는 특정한 별을 정하고 기준이 되는 지점에서 별과 달이 만나는 시각과 배가 위치한 곳에서 만나는 시각을 비교하면 경도를 알 수 있다는 의미다.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한 시간 차이가 난다면 경도 15도(360도/24시간) 차이가 나는 셈이다.

그러나 제시된 방안들 중에 경도법의 기준을 충족하는 것은 없었다. 핵심 문제는 선박이 위치한 특정 지점에서 시간을 정확히 계측할 방법이 없다는 점에 있었다.


이에 경도법에 대한 소식을 들은 시계공 존 해리슨은 바다에서도 시간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해양 시계 개발에 착수한다. 그는 1735년에 첫 해양 시계인 크로노미터(chronometer) “H1”을 선보이고, 끊임없는 개량을 거듭해서 68세가 되던 1759년에 지름 13cm의 회중시계 H4를 완성한다.


이 덕분에 영국은 항해술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었다. 송병건 교수가 해양 시계 기술을 “대영제국의 기반”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다.




샌디에고 항구의 입구를 지키는 포인트 로마 반도에는 카브리요 국립 기념비가 있다. 후안 카브리요는 1542-43년에 캘리포니아 해안을 탐사한 최초의 서양인 항해사다. 포르투갈 정부가 기증한 카브리요의 동상은 지금도 샌디에고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가 원정대를 이끌고 출발할 때, 캘리포니아 해안의 지도는 아직 그려지지 않았었다. 서양의 관점에서는 그야말로 미지의 세계로 나선 것이다.


카브리요도 참여했던 식민 지배의 역사를 미화할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그가  누구도 가보지 않았던 항해를 나서는 순간을 상상해보며 묻게 된다.


때로는 망망대해처럼 느껴지는 삶의 바다를 항해하며 자신의 위치를 어떻게 파악하는지.


무엇을 북극성으로 삼아 오늘도 각자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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