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26
책상 앞에 앉으면 바로 뒤에 소파가 있고 모니터를 넘어서는 침대가 보인다. 반경 1미터 이내에 앞뒤로 위험 요소에 포위되어 있는 형국이다.
이제는 커블 덕분에 책상 앞에 앉는 것이 조금은 더 편해졌지만,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줌 통화가 아니면 도중에 소파에 널브러져 있거나 침대에 누워 있던 적도 적지 않다.
계속되는 코로나 시국에 일찍 백신을 맞고 안정적인 주거환경을 누리는 것은 분명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이제는 거의 5년 동안 머문 1인실에는 많은 스튜디오가 그렇듯 욕실에 들어가는 문과 복도로 나가는 문 외에는 아무런 경계가 없다.
카페인에 의지해서 가까스로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웹 브라우저로 논문이나 통계 자료를 검색하다가도 새 창을 띄워서 주소 칸에 “f”나 “y”를 치고 자동 입력 후 엔터 키를 누르고 소셜 미디어와 영상의 세계에 빠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스마트폰에 대해서는 굳이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 26:41)가 더욱 자주 떠오르는 요즘이다.
모든 것이 허용되어 한없이 자유로운 일상의 모습은 바람직하거나 아름답지만은 않다. 고정적인 일정이 거의 없는 사회과학 분야 박사과정 고년차 학생이기에 그 문제는 배로 심각해진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 세계 인권 선언의 제1조다.
자유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숭고한 가치라는 명제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도 많지 않을 것이다. 지난 21일, 백악관에서 한국전쟁 참전용사인 랠프 퍼켓 주니어 퇴역 대령 옆에 한미 양국의 대통령이 무릎을 꿇은 사진이 깊은 감동을 준 이유는 무엇일까.
하지만 이토록 소중한 자유도 절대로 무한하지 않으며, 일정한 범위 내에서 향유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예전부터 늘 있었다. 존 스튜어트 밀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주장했고, 존 롤스는 자유를 강조하면서도 공정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 보수주의의 아버지로도 불리는 에드먼드 버크는 1790년의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에서 구체제(앙시엥 레짐)의 적폐를 모두 드러내고, 이전의 모든 사회 질서를 급속히 무너뜨리는 시도는 더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퇴근 시간에 시내의 모든 교차로에 갑자기 신호가 고장 나고 교통경찰이 전부 사라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내가 집에 갈 자유”라는 명분 하에 “모든 운전자의 모든 운전자에 대한 투쟁”을 보여주는 아수라장이 펼쳐지고, 보험 회사는 심각한 경영 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일부 무정부주의자를 제외하면 질서가 필요하고, 그 질서가 유지하는 일정한 경계선이 있어야만 한다는 주장에 대체로 동의할 것이다. 그 제도가 구현하는 구체적인 가치와 원칙에 대해서만 이견이 존재할 뿐이다.
건축가가 건물을 설계할 때, 초안을 마친 후에 구조공학자와 함께 설계안을 검토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친다고 들은 적이 있다.
화려하고 독특한 디자인의 건물이라도 무너지면 안 되는 법이다. 건물의 하중을 안정적으로 받칠 수 있어야 하고, 바람, 지진, 화재 등 다양한 외부적인 충격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건축가로서의 경험이 쌓일수록 여러 현실적인 제약의 테두리 안에서 창의성을 발휘하고 예술성을 추구하는 능력이 향상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처럼 개인의 삶에서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일정한 경계와 질서가 필요하다.
“선을 지키라”는 말은 타인의 사생활을 존중하고, 기본적인 상식과 예의를 지키라는 말만은 아닐 것이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지켜야 할 저지선이 있다.
“Hold the line”이라는 표현이 있다. 주로 전쟁 영화에서 적의 공격을 저지하고 전선을 사수해야 하는 상황에서 대사로 등장한다. 그런 상황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한 명이라도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전선의 한 부분이 통째로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서 투쟁의 대상은 다를 것이다. 무의미함과의 내적 싸움일 수도 있고, 게으름과의 씨름일 수도 있고, 생업의 현장에서 마주하는 구체적인 경쟁 상대일 수도 있다. 매일매일의 전투에서는 패배하는 날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 전쟁에서 지는 것은 아니다. 아침마다 일어나서 그 날 동안 사수할 전선을 땅에 긋는 행위, 그리고 그 행위를 가능케 하는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다.
이제 곧 줌 통화가 시작된다. 카메라를 끄고 조용히 듣고만 있어도 되는 통화다.
오늘도 모니터를 넘어서 침대가 보인다.
그 블랙홀의 중력을 이겨낼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