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28
각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세상에 대한 관심의 총량이 있다면 그 관심의 폭과 깊이는 아마도 반비례할 것이다. 구체적인 한 대상에 엄청난 열정을 쏟아부을 수도 있고,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넓고 얕게 분산된 흥미를 가질 수도 있다.
지오디의 "길",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는 인생을 길을 따라서 가는 여정으로 흔히 묘사하고 이해한다. 이는 진로 상담, "career path"와 같은 현실적인 고민에 대한 표현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비교적 안정적인 궤도에 안착한 사람조차도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면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늘 고민하기 마련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물음은 곧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다르지 않다.
가족, 친구, 동료를 비롯해서 그 길을 누구와 함께 나아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떼어놓을 수 없다. 이적의 "나침반" 중의 가사다.
난 다시 일어날 수 있어
어지러웠던 하루하루가 먹구름처럼 내 앞을 가로막아도
너의 눈빛이 마치 꼭 나침반처럼 내 갈 길 일러주고 있으니
삼십 년이 넘도록 세월의 풍파 가운데서도 마치 고목(古木)처럼 삶의 무게를 견디며 한 자리를 묵묵하게 지키다가 은퇴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절로 고개를 숙이게 된다.
날로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아쉽게도 갈수록 생소해질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더라도 어떤 한 가지 일을 일생을 바쳐서 충실히 감당하신 분들의 삶은 그 자체로 마땅히 존경을 받아야 할 것이다.
이와 전혀 다른 삶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불혹이 넘도록 종사하는 분야도, 심지어 살고 있는 나라도 수시로 바꾸며 살아가는 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삶의 목표나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여전히 확답을 할 수 없지만, 그 나름대로 행복하고 다채로운 삶을 즐기며 살아가고 있다고 하셨다.
뚜렷한 목적지가 없다고 해서 불행하고 불안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어디로 가고 계신가요”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오늘 머무는 곳이 바로 오늘의 목적지였다”라고 말하며 해가 다시 뜨면 또 다른 어딘가를 향해 발걸음을 서두르는 사람들도 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입자물리학에 대한 대중 과학 서적에 푹 빠져 지내던 때가 있었다. 책을 보던 도중에 거품 상자(bubble chamber)라는 장비로 미세한 입자들의 현란한 궤적이 포착된 사진을 보게 되었다. 직선으로 곧게 뻗어나가는 입자들도 있었고, 발레 무용수처럼 팽그르르 돌며 사방으로 회전하는 입자들도 있었다.
물리학에는 여전히 문외한이라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원리는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그 신비로운 사진을 보고 나서 완전히 매료되어 입자 궤적이 포착된 사진들을 인터넷에서 한참 동안 찾았었다. 자연이 빚은 걸작은 은하수만이 아니라 미시세계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그때 비로소 처음 알았던 것 같다.
김삿갓처럼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의 삶도, 어제처럼 오늘도 고요한 새벽에 일어나서 주방에서 그릇을 달그락거리며 그 나그네를 위해서 소박한 아침상을 차리는 여관 주인의 삶도 모두 그 나름의 의미로 가득 찬, 피차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한 인생의 다양한 모습이다.
어느 하나 빠질 수 없는 세상의 조화로운 단면들이다. 지극히도 평범한 여러 삶의 궤적이 일상 속에서 서로 부딪히고 결합되며 발산하는 빛은 그 무엇보다도 찬란하게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