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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침반 May 31. 2021

"This is Water"

2018.11.23 / 2021.05.30

타말파이스 산 주립 공원에서 내다본 태평양 (2020.07.18)


"This is water."


마흔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미국의 소설가 데이비드 포스터 윌러스가 2005년에 한 졸업식 연설의 지극히 평범한 제목이다. 스티브 잡스가 이미 하나의 전설이 되어버린 졸업 연설을 하기 불과 3주 전의 일이다.


월러스는 세상으로 나설 학생들에게 꿈과 미래와 세상에 대한 희망에 가득 찬 말을 하지 않고, 오히려 "평범한 일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주제를 다룬다. 물고기가 물이 없으면 살 수 없듯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너무나도 당연해서 많은 사람이 의식하지 못하며 살아가는 모든 것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연설의 중간쯤에서 월러스는 일상적인 상황을 묘사하며 말을 이어간다.


사무실에서 9시, 10시간 동안 열심히 일을 하고 나서 퇴근길에 집에 먹을 것이 없다는 사실이 뒤늦게 떠오른다.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교통 체증을 뚫고 사람이 바글거리는 시장에 도착한다. 허겁지겁 저녁 먹을 재료를 장바구니에 담고 계산대로 발걸음을 돌리는 순간 긴 줄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쉰다. 줄을 서서 극한의 인내심으로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바로 앞에서 어떤 여성이 자신의 아이에게 고함을 내지르며 폭발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상상만 해도 마음이 불편해지는 이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질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월러스는 우리에게 선택이 있다고 강조한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으며, 그 공간에서 우리는 선택을 할 수 있다"라는 빅터 프랭클의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만약 여러분은 생각을 어떻게 할지, 무엇에 주의를 기울일지를 진정으로 배웠다면,  상황을 피상적으로만 보는  이외에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것입니다. 북적거리고, 시끄럽고, 답답하고,  소비자로서 경험할  있는 최악의 지옥과도 같은 상황 속에서 의미를 발견할  있을 것입니다. 심지어  장면에는 어떤 신성함이 있음을 마치 우주의 별을 불태우는 화염만큼 강렬하게 체험할 것입니다. 연민, 사랑, 그리고 모든 것의 표면 아래에 존재하는 궁극적인 하나  같은 것을 말이죠. 이처럼 신비스러운 것들이  사실이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진리는 우리가  앞의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지 선택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무엇이 의미가 있는지, 무엇이 의미가 없는지 의식적으로 선택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에만 열중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월러스도 일상 속의 상황을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보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고 말한다. 감정적인 여유가 없는 날도 있을 것이고, 그럴 의지가 전혀 없는 날도 있을 것이다. 고속도로를 질주하면서 지나가는 풍경을 온전히 감상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모두 카뮈가 말하듯이 시시포스처럼 매일 홀로 무거운 돌을 산 꼭대기를 향해 굴리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 쉽게 잊는 건 아닐까. 주변에 자신을 사랑해주고 걱정해주는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온몸을 파고드는 외로움과 무의미함과 피로감이 깨끗이 사라지거나 잊히지는 않는다. 그리고 주변의 그 사람들도 내색을 하지 않을 뿐, 각자 자신만의 싸움을 힘겹게 이어나가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자신이 겪고 있는 모든 것을 남김없이 털어놓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럴 수 있는 용기와 굳은 신뢰가 있는 경우에도 그렇다. 모두가 모두에게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것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면 모든 인간관계는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고, 사회는 이내 붕괴할 것이다. 넬의 김종완이 "부서진 입가에 머물다"에서 노래하듯이--


힘들다 말하는 순간 모두 떠나버리죠
타인의 짐까지 짊어지기엔  세상이 너무 벅찬 


각자 살아온 모습과 배경이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에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조금씩 알아가는 모습도 그저 빙산의 일각이다. 그리고 월러스가 말했듯이 침착하게, 그리고 의식적으로 누군가를 이해하는 행위는 대단히 어렵다. 가깝고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이도 자세히 살펴보면 속 깊은 대화를 나누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가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일까. 이마저도 쉽지 않지만, 마주치는 모든 사람이 속으로는 힘겹게 자신만의 돌을 굴려 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적으로 기억하는 것이 아닐까. 자세한 상황을 바로 알 길은 없고, 이기적인 호기심을 앞세워서 캐묻는 것은 오히려 상대방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공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힘내세요"라는 한 마디를 그저 상투적인 말로 흘려 넘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생각보다 큰 힘이 될 수도 있는 말이다.


"This is water."


칼 세이건이 말한 우주 속에 떠다니는 "창백한 푸른 점" 위에서 우리가 모두 함께 공유하고 숨 쉬며 살아가는 무엇보다 소중한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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