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침반 Jan 22. 2023

배울 의지

2023.01.21

2012년 봄, 캠퍼스에서.


올해도 동문회의 공지를 받고 학부에 지원하는 고등학생 지원자들 면접을 하고 있다. 한국 시차를 맞추기 위해 주로 퇴근하고 저녁에 영상 통화를 하게 된다.


총 30-40분 동안 면접을 보고, 그 중 마지막 10-15분은 학생에게 질문할 시간을 준다. 학교에 대해서, 미국의 대학 생활에 대해서, 혹은 다른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질문해도 되니 편하게 물어보라고 말을 하고 나서 학생의 질문을 기다린다.


처음 20-25분 동안의 답변을 통해서 학생에 대한 인상이 주로 형성되지만, 남은 시간 동안 어떤 질문을 하는지도 그 학생이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기도 한다. 실은 무엇을 아는지보다 무엇이 궁금한지가 더 중요한지도 모른다.


면접을 하며 며칠 동안 연이어 학교에 대한 질문을 여러 번 받다 보니 자연스레 학부에서 보낸 4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총장님의 졸업식 연설문을 최근에 다시 읽었다. 학부 생활의 마지막 순간이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연설의 끝 무렵에 모든 졸업생에게 남긴 당부가 기억에 오래 남는다.


앞으로 책이나, 수업 계획서나, 강의 영상을 찾는 건 전혀 어렵지 않을 것이에요. 정말 어려운 건 여러분의 모든 선생님이 이미 심겨준 것을 지키는 것이에요. 항상 배우려고 하는 의지를 지켜내야 할 것입니다. 어른으로서의 삶을 지탱하는 일상의 틀을 탈피할 힘이 필요합니다. 책을 읽고자 하는 마음을, 생각할 시간을 애써 찾아야 합니다. 배움이라는 숭고한 가치를 지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지켜내기 위해 노력한다면, 인생이라는 이 여정은 더욱 보람이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동안 얼마나 잘 지켰는지 되돌아보면 민망함이 앞선다. 일상의 관성에 익숙해지면 머리는 서서히 굳고 시야는 점점 좁아진다.


이웃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세상으로부터 숨지 않는 것. 새로운 가능성에 문을 닫지 않는 것. ‘배울 의지를 지켜내는 것’은 단순히 지적 호기심뿐만 아니라, 이 모든 것을 내포하고 있을 것이다.


비록 잘 지키지는 못하더라도, 애써 지키고 싶은 무언가가 있는 건 소중하고 감사한 일이다. 지키고자 하는 삶의 방향성이 조금 더 깊이, 더 명확하게 새겨진 건 학부에서의 4년 동안이 아니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불편함에 대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