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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침반 May 29. 2021

Hohenschönhausen

동독 비밀경찰 구치소 방문기 (2018.12.21)

2013년 여름, 스톡홀름의 한 연구기관에서의 인턴십이 끝난 후에 베를린 여행 계획을 세우던 중이었다. 관광 명소를 검색하던 중 뜻밖의 장소가 눈에 들어왔다. "당의 창과 방패"로 불린 동독의 비밀경찰 Stasi(Ministerium für Staatssicherheit, 국가보위성)의 중앙 정치범 구치소였던 Berlin-Hohenschönhausen Memorial이었다. 학부 2학년 수업 때 소련에 대해서 배운 적이 있어서 방문할지 잠시 고민했지만, 베를린 시내 중심에서 동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아쉬운 마음으로 계획에서 뺐다.


하지만 베를린에 도착해서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예약했던 숙소가 전산 오류 때문에 방이 없어서 시내에서 동쪽으로 벗어난 다른 숙소로 옮겨야 한다고 카운터 직원이 거듭 사과하면 택시를 불러줬다. 묵을 곳을 다시 알아볼 여유가 없던 터라 새로운 숙소로 갔다. 베를린에서 지내는 동안 아침마다 시내 중심으로 나가는 시간은 더 걸리게 되었지만, Hohenschönhausen Memorial까지는 걸어서 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상황이 이렇게 된 만큼 계획을 바꿔서 어느 흐린 날의 오후에 Hohenschönhausen을 방문했다.



이 시설은 1951년부터 1989년까지 Stasi의 중앙 정치범 구치소로 사용되었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나서야 그 존재 사실이 알려졌다고 한다. 독일 현지에서 단체 방문을 하면 전 수감자가 직접 안내를 할 만큼 최근까지 운영된 시설이다. 근처에 살고 있는 일부 전 수감자는 지금도 장을 보러 가면 구치소에서 근무했던 경비원들과 요원들을 종종 마주친다고 한다.



수감자들은 출근길에 아무런 예고 없이 Stasi 요원들한테 체포되어 구치소로 압송되었다. 위의 사진은 압송 차량의 내부를 보여준다. 공포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수감자는 체포되는 즉시 Stasi 요원을 제외한 모든 사람으로부터 철저히 고립되었다. 차량 내부에도 수감자 사이에 문이 설치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수감자는 독방에 수감되었고, 두 명이 같이 수감되는 경우에도 한 명은 수감자를 가장한 Stasi 요원이었다. 위의 사진이 보여주듯, 조명을 포함한 독방 안의 모든 것을 외부에서 완전히 통제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일부 수감자들이 옆방의 수감자와 소통을 시도하기 위해 숟가락으로 변기의 안쪽을 치는 것을 발견한 Stasi는 이를 방해하기 위해서 물을 내리는 것조차도 밖에서 통제하도록 시설을 개조했다.



이토록 잔인한 치밀함은 복도의 "신호등" 체계에서도 나타난다. 수감자가 독방에서 취조실로 이동 중에 다른 수감자를 보지 못하도록 경비원이 서로에게 신호를 보낸 것이다. 빨간 불이 켜져 있으면 그 복도에서 다른 수감자가 이동 중이라는 뜻이었다. 불이 꺼질 때까지 그 주변에는 다른 수감자가 절대로 이동하지 않도록 통제했다. 그리고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다른 경비원에게 지체 없이 통보할 수 있도록 구치소 전체에 벽을 따라서 잡아당길 수 있는 줄을 설치했다.



조사를 마치면 수감자들은 철도로 다른 수감 시설로 이송되었다. 이에 사용된 철도와 열차도 보존되어 있다.


부끄럽고 어두운 역사를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직시하고 끊임없이 되새기는 독일 사회의 모습을 Hohenschönhausen에서 다시 한번 볼 수 있었다. 독일 남서부의 도시 프라이부르크에는 나치 정권 치하에서 유대인이 끌려간 자리마다 "걸림돌"이 설치되어 있고, 세계 2차 대전 말미에 소련군이 베를린을 점령했을 때 연방 의회 건물 내부에 소련 병사가 남긴 낙서는 지금도 보존되어 있다.



폴란드에 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박물관도,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 있는 투올 슬랭 대량학살 박물관도, 서울에 있는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도, 곧 "민주인권기념관"이 설치될 전 남영동 대공분실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모두 끔찍한 역사를 다시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다.


이를 보며 북한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훗날에 어떻게 기억될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평안남도 개천/북창의 제14호 관리소 (총면적 153 km²), 함경남도 요덕의 제15호 관리소 (총면적 365 km²),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인근의 제16호 관리소 (총면적 539 km²), 함경북도 청진의 제25호 관리소가 여전히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2014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의 최종 보고서에 의하면 총 8만~12만 명의 수감자가 이 4개의 시설에 수감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외에도 북한 전역에 있는 교화소에서 수감자들이 열악한 조건 속에서 심각한 인권 유린에 노출되어 있으며, 북한의 주요 도시마다 있는 국가보위성의 구류장에서는 밤중에 끌려온 수감자들이 혹독한 고문을 받고 있을 것이다. 중국 공안에 체포된 탈북 난민이 강제 북송될 때 건너오는 다리도 위성사진으로 볼 수 있다.


탈북 전에 관리소에서 경비병으로 근무한 안명철 씨의 증언에 따르면, 관리소의 경비병들은 유사시 증거 인멸을 위해 신속하게 대량의 수감자를 "처리"하는 훈련을 받는다고 한다. 날로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한반도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참혹한 일들은 최대한 빨리 중단되어야 하고,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확실히 기억되어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해방 70주년을 맞이해서 BBC가 촬영한 영상을 보며 생각해본다. 인간이 아무리 불완전하고 나약한 존재라도 다시 한번 기억하고, 다시 한번 절실히 붙잡고 되새겨야 한다.


Never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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