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04
몸이 안 좋으면 그저 “아프다”는 말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증상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각종 검사를 실시해야 한다. 영상을 촬영하고, 체액을 분석하고, 때로는 조직검사도 해야 한다. 그 검사의 결과를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평가를 해야만 병을 진단을 할 수 있고, 적절한 치료를 진행할 수 있다.
북한 인권 활동을 하다 보면 “북한 나쁜 건 다 알지 않느냐”는 말을 종종 듣는다.
때로는 북한을 악마화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접하게 된다. 좋든 싫든 대화의 상대로 삼아야 하는데, 불편한 이야기를 꺼내는 건 곤란하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나쁘다”는 주관적인 판단은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객관적인 기준을 사용해야 감정이 개입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고, 인권 문제가 정치화되는 것도 막을 수 있다. 오히려 악마화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보편적인 기준에 따른 상황파악과 문제제기가 절실하다.
한 나라의 인권 상황을 평가하는 객관적인 기준이 엄연히 존재한다. 2차 대전 직후에 작성된 세계인권선언으로부터 파생된 사회권 규약(ICESCR)과 자유권 규약(ICCPR)이 있고, 아동권리 협약(CRC), 장애인의 권리에 관한 협약(CRPD), 여성차별철폐협약(CEDAW) 등 구체적인 대상에 대한 협약도 여럿 있다.
북한은 이 다섯 협약을 모두 비준했다. 강제실종방지협약과 고문방지협약 등 가입하지 않은 협약도 있으나, 최소한 이미 가입한 협약을 얼마나 철저히 준수하고 있는지는 충분히 평가할 수 있다.
인권 상황이 완벽한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하다고 스스로 주장하는 국가는 실상 독재 국가인 경우가 많다.)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2006년에 도입한 보편적 정례 검토(UPR)라는 제도를 통해 모든 유엔 회원국은 주기적으로 다른 회원국과 시민사회단체로부터 자국의 인권 상황에 대한 공개적인 평가를 받는다.
아울러 “나쁘다”는 막연한 판단을 넘어 구체적인 피해 사례를 볼 필요가 있다. 인권 침해는 구체적인 가해자와 피해자가 존재하며,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시점에 발생한다.
한국과 기타 국가에 정착한 탈북민의 증언은 물론이고, 국군포로와 현재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한국 국적자 6명, 그리고 다수의 전후 납북피해자의 가족도 목소리를 높인 지 오래다.
흔히 “북한이 나쁘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다”라고 하지만, 북한에서 발생하는 인권 침해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가 실제로 얼마나 널리 알려져 있는지는 의문이다. 시민사회단체와 관련 기관들이 계속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다.
약 10만 명이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있다는 사실이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만큼 많이 알려져 있었다면, 각국의 대북정책이 지금과는 같지 않았을 것이다.
그 땅에서 억울하게 목숨을 잃고, 꿈과 희망과 삶의 모든 가능성을 박탈당한 개개인을 기억해야만 한다.
객관적 기준에 따라 비판을 하고 구체적인 사례를 조명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당장의 대북정책에 인권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반영하는 것도 중요하다. 북한을 안보 위협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불충분하다. 또한 한동대 송인호 교수가 지적하듯이,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진행하게 되더라도 어떤 가치를 내세우고 어떻게 지킬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핵심적인 가치를 모두 양보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보다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 영원한 독재는 없다는 전제에 동의한다면, 북한에 어떤 형태로든 변화가 찾아올 것이다. 그때에 어떤 분야에서든 북한 주민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그들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 주민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일찍 노력하고 알려야 한다.
그 한 명 한 명의 삶을 온전히 치유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섣불리 움직일 수는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