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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침반 Feb 26. 2023

좋은 일

2023.02.25

2022년 10월, 뉴욕 유엔 본부에서.


“좋은 일 하시네요.”


처음 뵙는 분들에게 무슨 일을 하는지 말씀을 드리면 이렇게 격려를 해 주시는 분들이 있다. 감사한 일이다. 굳이 해석하자면 ‘사적 이익이 아닌, 공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활동’이라는 인식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그러나 생명을 해치는 일이 아니고서야 ‘나쁜 일’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모두가 각자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를 지탱하는 역할들은 상상 이상으로 다양하다. 어떤 활동은 눈에 띄지도 않고, 경제 지표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일이 다른 일보다 더 중요하다거나,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코로나 도중에 지정된 “필수 업종 종사자”의 범위를 보며 그동안 지녔던 선입견을 뒤늦게 발견한 사람도 적지 않으리라.


무엇보다 현재의 상황만을 보고 타인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원하고 바라고 계획한 그대로 삶의 경로를 따라가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자신이 진로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어떤 진로가 자신을 선택하기도 한다.




인권 단체에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전개다.


허준이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연과 의지와 기질이 기막히게 정렬”되어 여기까지 왔다고 믿는다. 앞으로는 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예상할 수 없는 ‘우연’의 영향이 절대적일 것임은 확신한다. 내일 일을 누가 알겠는가.


지금 속한 분야에서 직원으로 일을 한 기간이 도합 3년밖에 안 되었지만, 일찍이 깨진 착각이 있다. 소위 '좋은 일‘이라고 해서 선한 의도만으로 성과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일의 목적이 되는 분들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목표를 명확하게 세워야 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전략을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과, 이에 필요한 사람과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 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업무를 적절하게 분담해야 한다.


동료들을 보살피고, 각자 업무를 통해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울러 한 단체가 모든 일을 할 수는 없으니, 다른 기관이나 조직과의 협력을 모색해야 한다.


외부의 변화가 발생하면 이 모든 것을 재검토하며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누군가가 ‘좋은 일’이라고 여겨주는 일도 결국은 일이다.


공적인 목표가 있기에 깨어 있는 모든 순간에 사력을 다 하지 않으면 직무유기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때 했었다. 엄중한 문제를 두고 휴가를 다녀오는 것이 온당한지 자신에게 묻기도 했었다.


그러나 맹목적인 몰입은 바람직하지 않다. 일상의 균형을 지키지 않으면 삶의 어느 영역도 온전할 수 없다.


먼저 스스로 중심을 잡을 수 있어야만 주어진 기회도 소중히 대할 수 있다. 자신만의 평형상태를 찾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끝을 알 수 없는 경주인데 매일 전력 질주를 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리고 지금 처한 삶의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 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동시에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자신의 위치를 냉정하게 봐야 한다. 오직 한 사람의 노력으로 문제가 일거에 해결되거나, 오직 한 사람의 실수로 인해서 하늘이 무너지는 일은 흔치 않다.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진정 어떤 ‘좋은 일’에 기여할 수 있을지는 미리 자신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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