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둘

2024.12.09

by 나침반
IMG_5201.HEIC 2024.12.07


2년 전, 서부에서 다시 동부로 이사를 오는 것을 내심 망설일 때 부모님께서 “그래도 어딜 가든 좋은 사람들은 만날 거야”라고 말해주셨다.


위로를 전하기 위해서만 하신 말씀은 아닐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각자 삶의 관성이 더 굳어진 상태에서 처음 만나게 되고, 종종 안부를 묻게 되는 사이라도 꾸준히 이어지지는 않는 인연이 대부분이다. 개중에는 피해를 주고 상처를 남기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60년 남짓의 세월을 되돌아보니 그래도 삶의 모든 단계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더라, 는 부모님의 진심 어린 조언으로 받아들였다.


개강 즈음, 오랜 친구가 응원의 의미로 TWS의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를 들어보라고 추천해 줬다. (뮤직비디오의 풋풋함과 자신의 모습이 절망스러울 정도로 대비가 되어서 혼자서 한참 웃었다. 설마 놀리려고 그런 건 아니겠지.)


서른을 넘어서 다시 학교를 오다니. 불과 1년 전만 해도 내다보지 못한 전개였다.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지만, 32번째 생일을 앞둔 시점에서 입학을 했으니 동기들 중에 나이가 많은 축에 속한다.


물론 입학에 나이 제한이 없고, 인생에는 정해진 시간표가 없고, 30대 초반도 매우 젊은 나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최대 10살 차이가 나는 동기와 같은 환경에서 동등한 자격과 신분으로 무난하게 지내는 것은 간단하지만은 않게 다가왔다. 특히 한국 정서상 나이가 가지는 위치에너지를 모르지 않기에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20대 초반 때 주위에 있는 30대 초반의 선배들을 어떻게 바라봤었는지 생각해 보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일단 그 수도 적었다.) 나보다는 훨씬 어른이겠구나,라고 어렴풋이 짐작만 했던 것 같다.


서른. 어리다는 핑계를 댔다가는 다 큰 어른이라는 것이 질책이 되어 돌아오고, 어른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가는 코웃음에 조롱거리가 되기 십상인 이상한 나이.


<멜로가 체질> 중의 대사다. 막상 서른둘이 되어보니 전혀 어른스럽지 않은 자신의 모습에 자주 당황한다. 정신연령은 20대 초반에 정체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다. 말실수의 빈도도 줄어들지 않고, 나잇값을 하는 최소한의 책임을 다 하고 있는지도 미지수다.


그럼에도 첫 학기의 막바지에 다다른 지금, 이번에도 부모님의 조언이 틀리지 않았음에 감사할 뿐이다. 인연도 마음대로만은 되지 않지만, 맺어진 인연들을 어제보다 오늘 더 소중히 대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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