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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축하

2024.12.18

by 나침반
2024.12.16


카톡에 들어가면 오늘 생일을 맞이한 지인들의 목록이 보인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목록을 확인하고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는다.


생일을 축하해 주는 연락을 받는 것을 싫어할 사람은 없는데 왜 연락을 하지 않나, 물을 수도 있겠지만 연락을 주저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라고 조금은 구차하게 변명해 본다).


일단 불쑥 전화를 걸어서 축하를 해줘도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사이라면 이미 생일을 기억하기 위해 카톡에 의존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리 달력에 기록을 해놓고 식당 예약이든, 카드든, 선물이든 준비를 했을 것이다.


오랜만에 연락을 하는 대상이라면 "잘 지내지? 생일 축하해 ^^ 오늘 즐거운 하루 보내길 바라"는 문자로 시작되는 대화는 두세 번 문자를 주고받으면 연료가 바닥난 비행기처럼 동력을 잃고 추락하기 마련이다.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으로 문자를 보냈더라도 대화는 금세 상투적으로 변하고 답장 사이에 걸리는 시간은 속절없이 길어진다. 그 대화를 어색하지 않게 이끌거나 아름답게 끝맺을 말재주가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애초에 대화를 시작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설령 연락을 해야 할 다른 이유가 있는 사람이라도 자신의 이기적인 필요나 부탁으로 인해 생일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차라리 며칠을 기다린 후에 연락을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리고 보니까 며칠 전에 생일이었더라!")


그리고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굳이 내가 축하해주지 않더라도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줄 누군가가 곁에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게 된다. 조금은 냉정하게 말하자면, 가깝지 않은 누군가에게 받는 생일 축하의 한계효용은 제한적일 것이다.


바쁜 와중에도 마음과 시간을 내어 보내준 예상치 못한 생일 축하로 인해 인연이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아예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제는 카톡에 들어가서 목록을 확인하면 많은 경우에는 연락을 하는 대신 오늘도 건강하고 평안하게 보내고 있기를 짧게 기도해 본다.


결국 이어질 인연이라면 부족한 기억력으로 인해서, 좁은 마음으로 인해서, 혹은 어떤 사정으로 인해서 잊은 몇 번의 생일 축하가 그 인연을 무너뜨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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