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16
마지막 글자의 받침이 시옷으로 바뀌면 '중반'이라는 그럴듯한 규칙은 누가 만들었을까.
이제 만 서른셋이니 나잇값을 못할 때마다 '아직 30 초반이에요'라는 궁색한 핑계도 댈 수 없다. 도대체 누구에게 하소연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으니 자신의 부족함을 솔직히 인정하는 수밖에.
나이가 익숙한 나이는 오지 않을 것만 같다. 그 낯섦은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혹은 자신이 계획했던 삶의 시간표보다 뒤처지고 있다는 실망감에서 비롯되는 건 아니다. 적어도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삶의 시간표는 없으니.
나이가 낯선 건 자신이 갈수록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깨달음에서 오는 것 같다. 시간이 흐른다고 더 성숙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떡국이나 딸기 케익을 먹으면 확실히 바뀌는 건 체중뿐이다. 자신을 살피지 않고 지내다 보면 생각과 감정의 습관은 더욱 굳어가고 시야는 더욱 좁아진다.
한 인터뷰에서 이동진 평론가가 '어른스러움'에 대해 말하면서 어른을 방파제에 비유한 적이 있다. 쉴 새 없이 다가오는 파도를 막아내면서 자리를 지키는 방파제처럼 자신의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는 사람이 진정한 어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일상의 모든 것을 당연히 여기지 않고 아침마다 눈을 뜨면 하루를 진심으로 대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혹여나 내키지 않는 하루가 찾아오더라도 담대하게 마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져본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크고 작은 파도가 들이닥치더라도 낙심하지 않고 자리를 지킬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반드시 다듬어져야 하는 단점이나 부족함을 그 파도가 깎아내 줄지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