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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침반 Jun 01. 2021

1919.03.01

3.1 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며 (2019.03.01)

어느새 완공된 신축 기숙사 단지 (2021.05.24)


대학원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캠퍼스 곳곳에서 시작된 공사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학교가 건설업 붐으로 경기 부양을 추진한다는 농담이 들릴 정도로 공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건물 신축 계획의 주된 부분은 아마도 대학원생을 위한 대규모 기숙사 단지일 것이다. 학과 건물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있어서 공사 현장을 매일 보게 된다.


오늘과 어제의 차이는 뚜렷하지 않지만, 이번 달과 지난달, 그리고 올해와 작년의 차이는 분명하다. 때로는 1882년에 공사가 시작되어 아직도 완공되지 않은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처럼 이 공사가 도대체 언제쯤 끝나는 건지, 다소 유치한 의문이 들다가도 눈에 띄게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 완성된 모습이 궁금하고 기대된다.


이 모든 공사가 끝난 후에 입학하는 학생은 자신이 사는 기숙사가 어떻게 지어졌는지 알지 못할 것이고, 그 기숙사가 지어지기 전에 그 자리에서 누가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예전에 그 동네에 살았던 졸업생이 와서 사진을 보여줄 수도 있고,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가 도면을 상세히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학생은 실험실에서 고생스러운 일과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올 때, 자신이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 다른 세상이 오랫동안 살아 숨 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마도 쉽게 떠올리지 못할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의 노력과 희생으로 만들어진 세상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지금 큰 염려가 없이 살아갈 수가 있다면, 그것은 이름 모를 수많은 사람이 그토록 처절하고 치열하게 싸웠기에 그만큼 견고한 성이 쌓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100년 전 오늘, 한반도 곳곳에서, 그리고 북간도, 연해주, 하와이와 필라델피아에서 자유를 갈망하며 울려 퍼진 함성을 기억해본다.


그래서 우리는 분연히 일어나는 것이다. 양심이 우리와 함께 있고, 진리가 우리와 더불어 전진하니, 남녀노소 구별 없이 음침한 옛집에서 뛰쳐나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더불어 즐거운 부활을 이룩할 것이다. 천만년을 이어오는 조상들의 넋이 우리를 안으로 지키고, 전 세계의 움직임이 우리를 밖에서 보호하니, 일을 시작하기만 하면 곧 성공을 이룰 것이다. 오로지 저 앞의 빛을 따라 힘차게 전진할 따름이다.

--- 3.1 독립선언서 현대 한국어 번역문 중


지금도 들려오는 그 뚜렷한 메아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날의 의미를 되새기는 행위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누군가는 협소한 국수주의에 매몰되는 것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애국심”을 현재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포장하고 소비하는 것이 아니냐고 지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우리 모두의 삶은 어떤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피어나고, 그 흐름 속에서 다시 소멸한다. 그 흐름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내가 오늘 보내는 하루는 사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어떤 세상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아가고, 내가 살아 숨 쉴 수 있음은 절대로 내 노력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찾아가는 것의 의미는 전혀 작지 않다.


그뿐일까. 각자의 인생에서도, 인류의 역사에서도 뒤를 돌아보는 것은 단지 잃어버린 과거에 대한 아련함 때문이 아니라 앞으로 갈 길을 더 밝히 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누군가가 만들었듯이, 우리는 앞으로 누군가가 살아갈 세상을 각자의 자리에서 만들어가고 있다. 세상은 우리를 만들어가고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만들어간다.


100년 전의 그날만큼 상황이 절박하지 않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때와 같은 절실함으로 우리에게 맡겨진 세상을 소중히 가꿔야 하지 않을까. 작은 일도 없고, 중요하지 않은 일도 없다는 믿음 속에서.


1919년 3월 1일.


그날의 함성을 되새기며 오로지 저 앞의 빛을 따라 힘차게 전진하는 모두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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