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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침반 Jun 01. 2021

사랑스러운 쓰레기

2021.03.24

산호세 시립 장미 공원 (2021.05.17)


대학원을 캘리포니아로 오게 되면서 매우 단순하면서도 곤혹스러운 문제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바로 분리수거다.


어떤 플라스틱 컵은 자연적으로 분해되는 재질로 만들어졌다는 그 신비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반면에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다른 컵은 재활용도 안 된다고 한다. 이 통은 씻고 뚜껑이랑 분리해서 따로 버려야 하는 건지, 저 우유갑과 비닐봉지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친구들이랑 점심을 먹은 후에 분리수거함 앞에 서서 마치 불현듯 삼라만상에 대한 심오한 고찰을 하듯 깊은 고민에 빠져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기숙사 건물 밖에 있는 분리수거함에 무언가를 버릴 때 혹시 누군가가 일일이 감시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막연한 불안감을 느낄 때도 있었다.


"그 좋은 머신 러닝을 왜 이 난제에 적용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잠시, “그럼 네가 한번 그 알고리즘을 구현해보지 않겠니!”라는 제안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분위기의 학교라서 도저히 말을 꺼낼 엄두가 나지 않는다. 턱없이 부족한 두뇌의 계산 속도로는 분리수거에 대한 "딥"러닝은 불가능하다. 기본개념이 부실한 학생에게는 간단한 응용문제도 굉장한 도전이다.


분리수거 과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지도 학습(supervised learning)이 필요할 것만 같다.




이처럼 기본적인 원칙은 최대한 지켜야 한다는 강박 때문일까. 길을 걷다가 땅에 덩그러니 떨어져 있는 구겨진 파란색 감자칩 봉지를 보면 즉시 주워서 가장 가까운 휴지통에 고이 모시고 싶은 충동이 찾아올 때가 있다. 물론 피곤한 날은 예외다. 거의 매일 아무런 이유도 없이 피곤하니 사실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만약 나에게 장갑과 집게와 충분히 큰 검은색 비닐봉지만 있다면 하루 종일 즐겁게 쓰레기를 주울 텐데, 라는 망상에 빠지기도 한다. 설사 필요한 도구가 모두 있다고 해도 늘 그렇듯이 욕심만 앞서고 미약한 의지와 인내심은 그 후과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누군가가 방금 심어놓은 사과나무 한 그루 옆에 떨어져 있는 뜯긴 과자 포장지는 반드시 내가 줍고야 말겠다는 집념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불타는 의지는 현실이라는 거센 폭포 앞에서 이내 순식간에 꺼지고 만다. 아무리 많은 환경미화원이 불철주야 거리를 청소해도 쓰레기는 계속 쌓일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환경 문제에 아주 관심이 없지는 않은 편이라고 자부하면서도 일상생활의 모습을 되돌아보면 민망할 때가 한둘이 아니다.


한 고등학교 선생님이 말씀하신 적이 있다. <Into the Wild>의 주인공인 크리스 맥캔들리스처럼 정말 모든 것을 철저히 버리고 홀로 광야로 향할 용기가 없다면 결국에는 자신의 여러 이상(理想)을 서서히 내려놓고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이제야 그 말의 의미가 약간은 이해되는 듯싶다.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가 하는 일도, 우리가 만드는 것도, 우리의 육체 그 자체도 모두 매립지에 쌓인 폐기물과 전혀 다르지 않다. 모든 업적은 결국 잊힐 것이고, 모든 탑은 끝내 쓰러질 것이고, 모든 생명의 불씨는 언젠가 꺼질 것이다.


흙으로 만들어진 우리는 결국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창세기 3:19). 그리고 21세기에 태어났다면 단연 세계적인 석학이 되었을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서신에서 자신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나기 전까지 좇던 모든 것을 이제는 쓰레기처럼 여긴다고 단언한다 (빌립보서 3:8).


이 지점에서 자연스레 의문이 생긴다. 만약 모든 것이 썩어 없어질 쓰레기와도 같다면, 도대체 무엇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가. 소중하게 여길 이유는 있는가. 그리고 아름다움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과연 쓰레기가 아름다울 수 있을까. 그 자체가 엄청난 형용모순이라는 생각부터 앞선다.




작년 연말에 잠시 한국에서 지내면서 <유퀴즈> 86회에 나온 김해의 "시 쓰는 환경미화원" 금동건 씨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그는 매일 오후 2시 반부터 9시간 동안 무려 200km를 운전하며 62군데를 방문해서 총 6톤이 넘는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한다. 그리고 새벽 1시가 넘어서 집에 들아오면 "오늘도 사랑스러운 쓰레기들을 무사히 잘 모셨다"는 생각을 하며 잠에 든다고 한다. 


그의 시 "세월"이다.


음식 쓰레기는 살아있다
불빛 한 점 없는 좁은 통 가득
넘치고 흐르며 국물마저 야단들이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은 지 오래
코끝 움켜쥐며 피해 가는 발걸음에
음식 쓰레기는 살아 움직인다

달콤한 초콜릿은 아니지만
기다리는 사람 존재하기에
뚜껑 가득 박차 이놈을 반겨주니
음식 쓰레기의 환영을 제대로 받은 자
나뿐인가 하노라

반갑다 쓰레기야 잘 쉬었니 인사를 건네며
사료로 새 생명 찾은 쓰레기
살아 숨 쉬고 있다.


가장 아름답고 고운 꽃은 보잘것없는 거름 위에 피어난다.


그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너무 쉽게 잊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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