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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침반 Jun 02. 2021

조언

2021.05.13

2016.12.14


가족끼리 우스갯소리처럼 종종 얘기하는 비공식 가훈이 있다. 붓글씨로 써서 액자에 걸기에는 너무 직설적이어서 '비공식' 가훈일 수밖에 없다. 그 내용은 이렇다.


“네가 알아서 해라.”


(“님이 알아서 하셈”을 볼드 궁서체로 크게 뽑아서 걸어놓으면 웃기기라도 하려나.)



 

갈수록 익숙지 않은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부모님의 조언을 구하는 일이 많아진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축적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인생의 지혜에 의지할 수 있는 건 대단한 축복이다.


하지만 적지 않은 경우에 조언과 무관하게 원래의 생각대로 행동했다. 어릴 때부터 고집이 세서 그런 걸까. 조언은 조언대로 귀 기울여 듣더라도 어차피 마음대로 행동하는 모습을 늘 보이면서 위의 가훈을 떠올리게 된 것 같다.


되돌아보면 바람직하지 않은 선택을 하더라도 치명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굳이 나서서 개입하지는 않으셨던 것 같다. 무엇이든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어야 자신만의 경험이 되기 마련이다. 아무리 많은 조언도 한 번의 직접적인 경험을 대체할 수는 없다.


매사를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충분히 예상 가능한 상황에는 적어도 마음의 준비는 하려고 하는 편이다. 가장 사랑하는 아이에게 맘대로 뛰놀다가 넘어져서 무릎을 다칠 자유까지 허락하는 그 마음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네가 상황을 가장 잘 알겠지만...”


조언을 구할 때마다 늘 이런 단서를 붙이는 친구가 있다.


맞는 말이다. 당사자가 아니라면 아무리 장황한 설명을 들어도 어떤 상황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상황에서 멀어질수록 더욱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는 있지만, 동시에 그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특히 비슷한 상황을 거듭 마주하다 보면 깨닫는 것 같다. 설명을 할 수 있어도 굳이 설명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있고, 혼자만의 기억으로 안고 가야 하는 일들이 있다는 사실을. 인내심을 가지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줄 사람은 흔치 않다.


비트겐슈타인도 말하지 않았던가. “말해질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라고.




길을 대신 걸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비슷한 길을 먼저 가본 사람의 조언이 도움이 될 수도 있고, 근거 없는 자신감에 사로잡혀 조언을 무시하고 막다른 길로 들어설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가장 원하는 건 따로 있지 않을까. 모두가 이 땅에 잠시 들리는 나그네라면, 가끔씩 서로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누며 '나'라는 한 글자를 벗어나서 '우리'라는 두 글자를 안식처 삼아 쉬어가는 것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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