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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침반 Jun 03. 2021

기회비용

2019.08.17

2019.04.27


어떤 선택의 경제적 가치를 가늠할 , "기회비용"이라는 개념이 사용된다.  선택이 가진 본질적 의미나 내재적 가치가 아니라,  선택을 함으로써 포기하게 되는 가장 값진 대안을 기준으로 가치를 평가하는 방법이다.


적당히 피곤한 하루, 평범한 수많은 하루의 끝에 불을 끄고 천장을 보면서 그 하루의 의미를 묻게 된다. 그리고 때로는 그 하루를 넘어서서 살아있다는 것 자체의 의미를 담담하게 묻는다.


엄청난 시련을 겪은 날이 아니라, 굳이 특별한 일이 없었던 날에 더 그런 건 아닐까. 어떤 고난 때문에 당장 괴로운 날에는 그런 생각을 할 마음의 여유조차도 없다. 이미 지쳐서 넘어져 있으면 한걸음 뒤로 물러서는 것은 힘들다.


자신의 존재가치를 물을 수 있는 덧없고도 적나라한 방법이 있다. 만약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그 뒤에 남겨진 세상의 모습은 어떨지 상상해보는 것이다. 바로 자신이 지탱하던 것들이 무너지는 장면을 생생하게 떠올리는 것이다.


가족과 친구, 그리고 동료들의 반응. 자신이 참여하던 업무에 발생할 지장. 자신이 속한 조직과 공동체에서 메워야 할 빈자리. 바로 그 모든 공백의 총합에서 내가 살아있다는 것의 의미를 찾으려고 시도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의 종착점은 결국 그 빈자리는 너무나 작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금세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 채워질 것이라는 두려움이다. 극단적인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사람이라도 그런 불안함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또 다른 방법이 있다. 자신이 사라진다면 없어질 것들의 무게가 아니라, 자신으로 인해서 남겨지는 모든 것의 무게를 떠올리는 것이다. 매일 초조한 마음으로 높이를 재면서 아등바등 쌓아 올리는 모래성과 같은 것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 남겨지는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채워지고 흘러가는 모든 것을 바라보고, 그 흐름 속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이다.


시베리아 한복판에서 허름한 이불을 덮듯, 몽롱하고 유치한 감상으로 칼바람이 몰아치는 냉혹한 현실 속에서 부질없는 위로를 조금이나마 찾자는 말이 아니다. 그 무엇보다도 절박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자신을 붙들고 지켜준 사람 한 명 한 명을 떠올리고, 그리고 자신이 지금 붙들고 지키려고 하는 모든 사람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부디 그 관계 속에서 자신이 살아있다는 의미를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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