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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침반 Jun 06. 2021

스톡홀름

2013년 여름, 여행의 추억 (2021.04.30)


2013년 8월 12일의 이른 아침, 베를린 시내의 숙소에서 공항으로 향하는 트램을 타기 전에 찍은 사진이다. 베를린에서 다시 스톡홀름으로, 스톡홀름에서 프라하로, 프라하에서 인천으로 가는 매우 비효율적인 비행 일정을 앞두고 있었다.
 
2013년 여름, 스톡홀름의 한 연구기관에서 2달 동안 인턴을 할 소중한 기회가 주어졌다. 마침 스톡홀름에 도착한 첫 주말이 연휴여서 첫 출근을 하기 전에 앞으로 2달 동안 주말마다 어디를 다닐지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스웨덴 안에서는 스톡홀름 시내와 근교 외에도 웁살라와 비스뷔 섬, 그리고 그 외에는 헬싱키, 코펜하겐, 오슬로, 베르겐, 탈린, 베를린을 들리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보면 혼자서 겁도 없이 배낭 하나만 들고 참 잘 돌아다녔다. 특히 탈린 같은 도시는 다시 들릴 수 없을 거라는 예감이 있어서였을까. 어릴 때부터 넓은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모님 덕분에 2달 동안 호사를 누렸다.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식당도 박물관도 모두 멋대로 정하고 일정도 필요한 대로 그 자리에서 맘대로 바꿨다. 도대체 왜 스톡홀름에서 오슬로까지 기차를 타기로 했는지, 생각하며 스스로의 체력과 인내심을 과대평가했던 것을 후회하는 순간도 있었다. 글을 쓰다 보니 늦은 저녁에 비스뷔 섬에서 돌아오던 배의 한복판에서 목을 기댈 의자가 없어서 식탁에 팔을 괴고 졸던 기억도 떠오른다. 라트비아의 공항에서 환승을 기다리는 진귀한 경험도 했다.


한 여름밤의 꿈만 같았던 그 여름은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이제는 다시 그럴 수 있을까, 되물어보면 잘 엄두가 나지 않는다. 코로나와 다른 여러 가지 현실적인 제약들을 차치하더라도 그렇다.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사는 삶도 분명 가치가 있다. 그런 자유분방한 생활방식을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답답하게 보일 수도 있다. 왜 여러 관계 속으로 굳이 뛰어드는지, 왜 자유로운 영혼으로 태어났는데 굳이 스스로 손목에 쇠사슬을 채우는지 묻던 루소의 한탄이 떠오른다. 모두 불완전한 사람이기에, 그리고 자신의 허물 때문에 관계 가운데에서 살아가는 일상이 매일 유쾌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조금은 알 것만 같다. 혼자서 세계일주를 하며 눈에 담을 수 있는 세상보다 지금 마주 보고 앉아있는 한 명의 사람 속에, 전화기의 반대편에 있는 한 명의 마음속에 그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풍성하고 고유한 세상이 있다는 것을.


누구나 내면에는 감춰진 세상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요. 그 누구도 예외 없이. 겉으로 보면 재미없고 지루하게 보일지라도, 모두 그 속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근사하고, 아름답고, 엄청난 세상들이 있어요. 그것도 하나만이 아니라, 수백 개의 세상이요. 어쩌면 수천 개의 세상.

--- Neil Gaiman, <The Sandman: A Game of You>


그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그렇게 서로가 매일 조금씩 서로의 삶에 스며들 수 있다면, 아마도 그보다 아름다운 의미로 가득 찬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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