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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침반 Jun 06. 2021

다이나모 작전

2019.04.08 / 2021.03.11 / 2021.06.05

누구나 속으로는 전쟁을 치르고 있고, 오늘도 또 하나의 전투를 싸우고 있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휘청거리고 있을 수도 있고, 쉽게 이길 생각으로 진격했다가 끝이 보이지 않는 교착 상태에 빠져 있을 수도 있고, 혈투를 잠시 중지한 휴전 상태에서 다시 전력을 가다듬고 있을 수도 있다.


완전하고 영원한 평화는 찾을 수 없다.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 시인과 촌장, "가시나무"


이것이 표면에 드러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아무에게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진이나 화산 폭발로 지구 속의 에너지가 조금씩 분출되듯 약간은 새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이 가감 없이 보인다면 정상적인 생활도,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이런 현실을 모두 알고 이해한다면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 것이 좋을까. 아무리 선한 의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도움이 강요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도움이 아니다. 눈 앞에서 화염이 타오르는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은 무모하다.


진정 선의를 가지고 한 행동일지라도 그 대상에게 정말로 의미 있는 도움이 되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사막에서 오랫동안 극심한 갈증에 허덕이던 누군가에게 물을 떠다 주지는 못하고, 큰 바가지에 물을 잔뜩 받아서 머리 위에 쏟아붓는 어리석음을 오늘도 범하고 있지는 않은가. 물을 건네면서 버드나무 잎을 띄우는 지혜를 발휘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한 사람의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거리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더욱 멀 수밖에 없다. 아무리 친밀해 보이는 관계 속에서도 실은 서로를 잘 모를 수도 있다. 그 누구에게도 절대로 알려지지 않았으면 하는 기억과 생각을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의 참상을 그 누가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을까.


타인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이해를 하는 것부터 대단히 어렵다. 처음 만난 누군가가 그 순간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전부 알 수는 없다. 가까운 사람이라고 해서 항상 더 쉬운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혹시 피해를 끼칠 수도 있으니 가만히 있는 것이 항상 최선의 선택일까?


먼저 문을 열어주기 전에는 상투적인 응원과 격려가 최선일 수도 있다. 거의 모든 인간관계에서는 그것이 전부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가 절박한 위기 속에서 지원군을 요청한다면, 목숨을 의지할 만큼 깊은 신뢰 속에서 도와달라고 한다면 그때는 손을 내밀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모두가 외로운 나그네라면 그런 순간에 어떤 형태로든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테니.


나치 독일군에게 포위되어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영국 군의 해상 철수 작전, "다이나모 작전"으로 명명된 1940년 5월의 그 작전을 돕기 위해 수많은 민간 어선이 수평선을 넘어오던 광경을 보며 환호하는 병사들의 모습을 그린 영화 <덩케르크>(2017)의 한 장면을 떠올려본다.


덩케르크 해변에서 철수하는 영국 군 (출처: 임페리얼 전쟁 박물관, © IWM HU 4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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