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06 / 2021.06.10
학부 2학년 때 교양 수업으로 전기전자공학과의 신호처리 개론 수업을 듣게 되었다. 졸업 요건 중 하나로 실험적인 “랩” 요소가 포함된 과학 수업 하나를 수강해야 했는데, 마침 이 수업이 그 요건을 충족했던 것이다.
화학, 생물, 물리 등의 수업에서처럼 복잡한 장비가 있는 실험실에 들어가는 것이 버거워서 고민하던 중에 이 수업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으로 수강 신청을 했다. 이 수업에서는 음향 신호에 다양한 필터를 적용해보고, 이미지 파일을 변환하는 등 컴퓨터 앞에서 비교적 손쉽게 할 수 있는 과제들이 “랩” 요소로 간주되었다.
한 학기 동안 신기한 개념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더 이상 기억나지 않지만, 디랙 델타 함수, 컨볼루션, 해밍 (7,4) 코드, JPEG과 MP3 압축 방식 등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내용을 배웠다. 영상에서 자동차 바퀴가 빨리 회전하기 시작하면 왜 눈에는 거꾸로 도는 것처럼 보이는지를 설명해줄 수 있는 위신호(aliasing) 현상과 같은 개념은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이 외에 “이동 평균”(moving average, rolling average)의 개념에 대해서도 배웠다. 주가와 같이 여러 시점에 그 수치를 기록할 수 있는 이른바 시계열 (time series) 데이터에 흔히 적용되는 수학적 기법이다. 어떤 시점 B을 기준으로 그 시점만의 수치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의 시점 A부터 B까지의 값의 평균을 구해서 시점 B의 값으로 대입하는 방법이다.
코로나19가 시작된 이후에 이 “이동 평균”의 개념을 흔히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신규 확진자 추이, 백신 접종 현황 등 정부 공식 사이트와 언론사의 그래프에서 “7일 이동 평균”이라는 표현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특정한 날의 수치와 함께 그날 기준으로 계산한 7일 이동 평균도 보여준다. 예를 들어 6월 10일 기준의 이동 평균을 계산할 때는 6월 4일부터 7일 동안의 일일 수치의 평균값을 계산하고, 6월 11일 기준의 이동 평균을 계산할 때는 6월 5일부터의 수치로 동일한 계산을 반복하게 된다.
왜 흐름이나 추세를 파악할 때에 이동 평균이 유용한 것일까.
최근 산타 클라라 카운티의 백신 접종 현황을 살펴보자. 카운티 보건당국의 공식 통계에 의하면 5월 28일(금)에는 총 10,673명분의 접종이 실시되었다. 5월 29일(토)에는 이 수치가 6,267, 그리고 5월 30일(일)에는 3,780로 급격히 하락한다.
어제와 오늘의 수치만을 비교한다면 당황스러운 하락세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보건당국은 이 수치를 보고 정책을 급격하게 수정하지 않았다. 주중과 주말 사이에는 가용 접종 시설, 의료 인력 등 뚜렷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일 신규 접종 수치를 살펴보면 토요일, 일요일마다 현저히 낮아지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러한 구조적인 차이를 감안하여 접종 추이를 보다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 7일 이동 평균을 계산할 수 있다. 일주일마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구조적인 요인들의 영향을 배제하면서 접종 추이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어떤 사회적, 경제적인 추세에 대한 의미 있는 분석은 객관적인 사실들 사이의 상관관계를, 그 행간의 의미를 읽어내면서 이루어진다. 단편적인 팩트만을 나열하면 역설적으로 현실에 대한 아무런 통찰도 얻지 못할뿐더러, 현실의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요즘 어떻게 지내니”라는 질문에 답을 할 때 삶의 다양한 측면을 이야기할 수 있다. 몸 상태, 기분, 하고 있는 여러 일의 진행 속도 등 다양한 요소를 떠올려볼 수 있다.
하지만 별도의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늘 어제와 오늘만을 비교하게 된다. 최근에 일어난 일, 최근에 느낀 감정을 가장 잘 기억하는 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삶의 모습이 가지는 방향성을 읽어내지 못하고 쉽게 흔들리기도 한다.
거시적인 흐름으로 보면 상승하는 주가도 일시적으로 하락할 수 있듯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흐르는 삶의 모습도 잠시 부정적으로 변할 수도 있다. “오늘이 어제보다 안 좋았다”는 막연한 느낌에 사로잡혀서 전혀 그럴 이유가 없는데도 의지를 잃고 절망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삶이 분명한 방향성을 가지지 않는 침체기가 찾아올 수도 있지만, 아마도 그렇지 않은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침체기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다 차분하게 바라볼 수 있을까.
매일 만나는 친구가 눈치채지 못한 어떤 변화를 1년 만에 만난 친구가 순식간에 발견하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이처럼 어떤 친구와 가끔씩 만나거나 통화를 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살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일기를 쓰거나 메모를 하면서 오늘의 상태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것도 한 방법이다. 지난 글과 대화의 기록들을 읽으면서 생각의 흐름, 감정의 흐름을 조금은 더 넓은 시야로 바라볼 수 있다.
각자 처한 위치에 따라서 그 방법은 다양할 것이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의 감상에만 빠져 있을 것이 아니라, 그 이동 평균에서 드러나는 흐름과 방향성을 바라볼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