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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침반 Jun 04. 2021

안전망

2021.05.06 / 2018.12.01

대전 한빛탑 (2021.02.08)


“금방 나을 듯. 나이 들면 다 그래. 너네는 젊을 때부터 관리 잘하도록~”


가족 단톡방에 남겨진 문자가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다행히 심각하지도 않고 충분히 회복과 관리가 가능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작지는 않은 일들로 최근에 종종 병원을 찾으시던 중에 태평양을 건너온 문자다.


이러려고 대학교 때부터 유학을 나오고 이제는 10년이 넘도록 1년 중 대부분의 시간을 떨어져서 지내기로 한 건 아닌데. “다 먹고살자고 하는 거다”라는 말이 틀리지는 않지만, “가족과 함께”라는 단서를 빼면 이 모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물이라고 불릴 자격조차도 불분명한 미세한 단백질 덩어리에 이런 분노를 느낄 수 있을 줄은 몰랐다. 굳이 “코로나 19”와 “SARS-CoV-2”라고 이름까지 두 개나 붙여줘야 하는 걸까. 


감사하게도 연말연시 동안 가족과 잠시 같이 지낼 수 있었지만, 아직도 아무 걱정 없이 자유롭게 오가지 못하는 것은 매한가지다. 홀로 이북에서 내려오시고, 4.19와 5.16, 1.21 사태 등 한국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으신 할아버지가 코로나가 닥친 이후 “세상이 참 무서워졌어”라고 전화기 너머 한숨을 쉬시던 것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주변의 그 누구보다도 서울의 지하철 노선도를 훤히 꿰고 계시고, 아직 대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서울의 동쪽 끝에서 지하철을 타고 아침 일찍 인천 국제공항으로 혼자서 마중을 나오셨을 정도로 바깥 구경을 좋아하시는데 이제는 1년이 넘도록 거의 하루 종일 집에만 계시는 모습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제도를 흔히 '사회안전망'으로 표현한다. 그렇다면 우리 각자의 '안전망'은 무엇일까.


모든 일이 원하는 대로 이뤄지고 몸과 마음이 지치지 않은 날에도, 하루의 끝에는 어떤 공허함이 존재한다. 어떤 어려움이 있던 날에는 그 공허함이 더 크게 다가온다. 불을 끄고 누워서 천장을 홀로 쳐다보는 그 순간에, 더 이상 무너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것은 무엇일까.


누군가에게는 책상 위의 가족사진일 것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날 오후에 친구가 보내준 문자일 것이다. 몇 년 전의 여행에서 누군가가 했던 농담, 주말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자주 찾던 학교 근처 식당의 장면, 직장 동료가 건네준 격려나 칭찬의 말 한마디, 혹은 오래전에 받았던 작은 선물이 누군가에게는 그 안전망의 일부일 것이다.


함께 하는 일상의 작은 순간들이 쌓여서 안전망이 되어간다. 아무도 닿을 수도 없고, 닿지도 않는 모든 정적의 순간 속에서 우리를 지키는 것은 그것뿐이 아닐까.




팬데믹 도중에 사랑하는 이들과 작별하거나, 아직도 만날 길이 없는 이들의 심정이 어떨지 감히 상상할 수 없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당연시했던 안전망이 실은 언제나 취약했었다는 현실이 이제야 조금씩 보이는 요즘이다.


그 취약함이 어떻게 견고함으로 느껴질 수 있는지, 아직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저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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