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해보겠다는 작은 손
채아는 뭐든 스스로 해보고 싶어 하는 아기다.
이유식을 먹일 때도 그렇다.
숟가락을 하나 건네주면, 다른 한 숟가락까지 뺏어 가려한다.
입 안보다 입 주변에 더 많이 묻히면서도,
채아는 끝까지 자기 손에 든 숟가락을 놓지 않는다.
“그래, 네가 한번 해봐.”
나는 늘 그렇게 말하며 숟가락을 두 개 쥐여준다.
하나는 채아 손에, 하나는 내 손에.
한 숟가락은 엉뚱한 곳으로, 한 숟가락은 겨우 입으로 들어간다.
테이블 위엔 쌀알이 튀고, 바닥엔 국물이 여기저기 떨어진다.
치우는 건 온전히 내 몫이지만, 이상하게도 그게 별로 아깝지 않다.
‘그래, 치우느라 힘들어도 괜찮아.
네가 즐거웠다면, 오늘 이유식은 합격이야.’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한편으론 속이 살짝 서늘해지기도 한다.
‘벌써 이렇게 스스로 하겠다고?’
대견한 마음과
‘조금만… 천천히 커주면 안 될까’ 하는 마음이
숟가락 두 개 사이에서 부딪힌다.
어느 날 오후, 낮잠에서 막 깨어난 채아에게
평소에 잘 갖고 놀던 장난감을 쥐여줬다.
동물 소리 나는 장난감도, 음악 나오는 장난감도
오늘 채아의 표정을 바꾸진 못했다.
새로 꺼낸 채소 장난감도 마찬가지였다.
잠깐 만지작거리더니, 생각에 잠긴 얼굴로 내려놓았다.
그러더니 느릿하게 나에게 기어와
내 배 위에 턱, 몸을 올려놓는다.
나는 채아를 두 손으로 꼭 붙잡고
작은 시소처럼 좌우로 흔들어 주었다.
채아가 갑자기 까르르 웃었다.
배 위가 금세 놀이터가 되었다.
그제야 알았다.
‘아, 오늘 채아가 갖고 싶었던 건
새로운 장난감이 아니라 나였구나.’
순간 죄책감이 밀려왔다.
혹시 나는 오늘도 내 일, 내 생각에만 몰두하느라
채아가 보내던 신호를 못 본 건 아닐까.
“채아야, 지금은 즐거워?”
입 밖에 내진 않았지만
마음속에선 계속 그렇게 물어보고 있었다.
웃고 있는 얼굴을 더 웃게 해주고 싶어서,
그 웃음을 그대로 붙잡고 싶어서
나는 조금 더 세게, 조금 더 오래 시소를 태웠다.
생각해 보면, 나는 부모님과 이렇게 논 기억이 거의 없다.
늘 형제들과 놀았고,
어른들은 바쁘거나 피곤했다.
그래서 이런 장면은 내 어린 시절엔 존재하지 않는 사진이다.
누구에게도 받아본 적 없는 장면을
지금 나는 내 아이에게 먼저 건네주고 있다.
채아는 요즘 의사 표현이 점점 또렷해진다.
먹기 싫은 약은 두 손으로 밀어내고,
내가 집안일을 하느라 멀어지면
짧은 비명 같은 소리로 나를 불러 세운다.
이제는 “같이 놀자”라는 말도
몸으로 할 줄 아는 우주인이 된 거다.
그래서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조금만 더 크면,
채아는 혼자서도 다 할 줄 알게 되겠지.
엄마 손 빌리지 않아도
장난감도 스스로 꺼내고,
이유식도, 물도, 마음도
스스로 잘 먹고 잘 채우겠지.
그때가 오면,
오늘 내 배 위에서 까르르 웃던 이 아이는
어쩌면 나를 슬쩍 밀어내며 말할지도 모른다.
“엄마, 나 혼자 할 수 있어.”
그래서 더 그렇다.
오늘,
장난감이 흩어져도,
이유식 그릇이 엎어져도 괜찮다.
웃고 있는 너의 얼굴을 그대로 지킬 수만 있다면
엄마는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다.
언젠가 네가 다시 우주 밖으로,
엄마 궤도를 떠나 멀리 날아가더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엄마 배 위 작은 놀이터에서
마음껏 웃어도 된다고.
나는 오늘도 그렇게,
숟가락 두 개와 배 위 시소를 준비한 채
우주인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