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en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 어디쯤 있는 집을 향해간다.
서울 끝자락 같지 않은 구수한 시장 풍경과 버스 안 에어컨. 한낮의 더위가 금세 수그러든다. 곧게 뻗은 길을 지나니 새 아파트로 만원인 동네가 나온다. 잘 가꿔진 정원을 거쳐 현관에 들어선다. 가시지 않은 새 건물 냄새가 코를 간질인다.
신혼 특유의 온기가 감도는 하얀 집에서 서툰 손길로 깎아온 과일을 받아 든다. 사각거리며 씹히는 소리가 기분 좋게 귀를 울린다. 낯선 도시에서 내 집에 있는 것 같은 편안함을 느낀 게 얼마만인지. 거실에 평온이 감돈다. 그 따사로움이 거대 쇼핑몰에서의 피로를 덜어준다.
긴장이 가신다. 쌓아 둔 이야기가 배어나온다. 봄바람 같은 여름 바람을 맞으며 그간의 삶을 풀어낸다. 일을 쉬고 있다는 네 이야기와 글쓰기로 고전 중인 내 일상이 맞물려 돌아간다. 속을 내보이는 게 지독히 서툰 너와 내가 상처받지 않은 척 살아온 시간이 두서없이 놓인다. 결혼, 출산, 육아, 일, 돈벌이, 직장, 여행, 추억. 대중없이 이어지는 수다. 조근거리는 목소리가 잔물결이 되어 우리를 감싸안는다. 경계도 긴장도 내려두고 속 시원히 대화를 해본 게 언제인지.
노을이 드는지도 모른 채 목이 쉬도록, 가슴이 아리도록 이야기를 이어간다. 말하기보다는 듣는 데 더 익숙한 우리가 한을 토해내듯, 설움을 뱉듯 쌓아둔 사연을 뱉는다. 그 순간이 시리도록 아름답게 느껴진다.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말이 아닌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내 이야기를 담을 줄 아는 귀가 절실히 필요했었다. 묵혀둔 짙은 그리움에 이야기 마디마다 코끝이 찡해진다.
어른이 되어 맺은 관계에서 너와 내가 겪은 관계의 공허. 마음이 빠진 누군가의 말은 걱정이 아닌 참견으로 들렸을 터. 내 삶에 손톱만큼도 중요하지 않은 타인의 말이 나를 뭉개려 했을 때의 절망감에도 담담한 척 그리고 덤덤한 척 견뎌온 시간이 고름이 되어 남아있다. 그 위에 닿은 네 말이 형언할 수 없이 따뜻하다. 내 더딘 진척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네 온기. 그 속에서 귀를 열어 두고 네 상처를 묵묵히 받는다.
언제부턴가 더디 뛰기 시작한 심장. 느린 가슴으로 세상을 대면한 현실의 난관. 집, 밥벌이, 발달과업. 눈 앞에 놓인 문제가 산더미 같고 갈 길도 먼 우리가 필요로 했던 건 명징한 결론이 아니었다. 우리에게는 편견 없는 착한 귀가 필요했다. 귀는 닫고 입은 여는 게 습관이 된 사람들. 날 선 혀에 찍힌 상처가 생각보다 많았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상처를 어루만지며 습관처럼 ‘그래’, ‘괜찮아’, ‘쉬어가자’를 내뱉는다. 일상을 둘러싼 주변 사람들은 왜 그 말을 해주지 않는지, 그 말을 듣는데 왜 2년이 더 걸려야 한 건지, 대체 사는 게 뭔지....... 연이어 계속되는 질문의 답을 구하지 못한 채 ‘그래’, ‘괜찮아’, ‘쉬어가자’ 세 마디를 가슴에 담는다.
긴 대화 끝에 네가 차린 밥상을 받는다. 피망이 들어간 된장국과 고향에서 보내 준 반찬을 곁들인 정갈한 식탁. 하얀 김이 나는 그 밥상이 왜 그렇게 감격스러운지...... 그렁그렁한 눈물을 삼키며 숟가락을 든다. 십 대 때는 상상도 못했던 곳, 이십 대 초반에는 보지 못했던 세상에서의 너와 나의 고군분투 위에 따뜻한 밥상이 겹쳐진다.
윤기 흐르는 밥을 입에 넣는다. 묵은 체기가 내려가 듯 가슴이 뻐근해져 온다. 창밖에서 불어 온 푸른 바람이 볼을 매만진다. 며칠 굶은 사람처럼 밥을 떠 넣으며 속으로 중얼거린다.
고맙다 친구야, 숨통이 되어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