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한 해, 무슨 조화였던지 흉한 말을 참 많이도 들었다.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독특한 사람들도 적지 않게 만났다. 무질서하게 오가는 말과 무례한 언행을 마주하며 ‘별별 사람’이 무엇을 뜻하는지 뼛속 깊이 실감했던 한 해였다. 건너 건너 들은 욕지기도 적지 않고 상식이 통하지 않는 상황도 많이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때까지 내가 알고 있던 세상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을 경험하는 사이 겁 없던 내게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사람에게 한 번도 경계심을 내비친 적 없었던 내가 벽을 치는 법도 익히게 됐다.
겨울 기운이 남아있던 봄, 귀를 씻고 싶은 말을 들었다. 나이를 망각한 언행이 거슬린다 싶었는데 역시나, 듣지 않았으면 좋을 말이 들려왔다. 내가 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할까 하는 생각과 함께 주체할 수 없는 불쾌감이 몰려왔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신명 나게 움직여대는 혀를 보고 있자니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침을 뱉어줄까, 따귀를 올릴까, 혀에 날을 세워 난도질을 할까. 짧은 순간, 수많은 생각이 나를 지나갔다. 대거리를 하기에는 지나치게 높은 연배, 소란이 일면 성가신 일이 많아질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쏟아지려는 감정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태연한 얼굴로 돌아서긴 했는데 그날 들은 오물 같은 말은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악몽에 시달리고 심장이 옥죄는 갑갑함을 느끼고 시궁창에 빠진 것 같은 불쾌감에 젖어 지낸 몇 달 동안 귀를 뜯어내고 싶다는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몰랐다.
닥치라는 한 마디를 못 하고 돌아온 게 못내 분하다는 내게 친구가 말했다.
나는 다짜고짜 학부모한테 '야이, XX 년아'라는 말도 들어봤어,라고.
그래서 뭐랬는데, 라는 내 말에 친구가 답했다.
네, ** 아버님.
그 한 마디를 더했을 뿐, 친구는 자존심이 상했다는 말도, 그로 인해 비참해졌다는 말도 더하지 않았다. 무표정한 친구의 얼굴을 보는데 헐어버린 듯했던 귀와 난도질된 것 같던 가슴의 통증이 문득 아무렇지 않게 느껴졌다. 왜 나는 더 쿨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도 일었다.
문득 그 웃픈 위로를 꺼내 본다.
일 년이 지나 돌이켜 보는 그 기억은 시리게 남아있다. 내 상처 위에 놓인 그 친구의 따뜻한 손이 부당하고 폭력적인 누군가에게 상처받은 게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은 내 지나친 감상일까. 평온한 물결 같은 삶을 살아온 그 친구가 나만큼 큰 파고는 겪지 않았으면 하는 건 이 험세에 맞지 않은 지나친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