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날이 오뚝하다. 볼은 봉긋하고 눈을 알사탕처럼 크다. 그 큰 눈 위에 공작새 깃털만큼 풍성한 눈썹이 내려앉아 있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아름다움이 뚝뚝 떨어져 내리는 것 같다. 흘낏, 만화 속에서 나온 것 같은 뽀얀 얼굴을 훔쳐본다. 예뻐 보인다, 더없이. 예쁜데 어쩐지 불편하다. 그 묘한 불균형을 느끼며 이름 모를 미녀를 지나온다.
코를 더 날렵하게 만들고 싶다던 친구가 끝내 성형외과를 찾았다. 수술을 마치고 나온 얼굴색이 슈렉처럼 파랬다. 눈도 벌겋게 충혈된 게 곧장 호러영화 촬영장으로 가도 될 것 같아 보였다. 터지기 직전의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아름다워지는 데도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구나 하고.
성형공화국의 오명이 하루 이틀 된 것도 아니고 내 주변에도 크게 건 작게 건 얼굴에 손을 대지 않은 사람이 없다. 대체로 칼을 대기 전보다 만족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돈과 시간을 들이고 약간의 고통을 감수하는 걸로 인생이 더 활기차 진다면 성형에 굳이 반기를 들 이유는 없다. 동서고금,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사람은 아름다운데 혹하기 마련이다. 시대마다 ‘미’의 기준이 다르다는 문제야 철학에서 고민할 일이고. 성형으로 만든 얼굴을 두고 사색에 잠길 필요까지는 없다. 내 눈에 좋아 보이면 그만인 것이다.
그런데도 어쩐지 성형수술이 총망라된 얼굴을 볼 때면 눈이 불편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화장을 하듯 한두 군데 살짝 손을 본 건 자연스레 봐 넘길 수 있는데 ‘성형했음’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는 얼굴을 대할 때면 도무지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다. 너무 예뻐서, 예뻐지려는 그 노력이 지나치게 찬란해서 눈이 불편해진다.
아름다워지기 위해 의학의 힘을 빌리는 건 물론 개인의 선택이다. 그럼에도 그 선택권 안에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위한 여지를 남겨둘 있으면 좋겠다. 예쁜데도 오래 두고 볼 수 없는 이 불편함이 가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