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연한 가을, 노란 응원가

Yellow

by Lunar G


전화 안 하기가 특기인 우리는 일상이 아무리 고돼도 통화버튼을 누르지 않는다. 네 메시지 함에도 내 메시지 함에도 공지 글이 더 많지 힘들다거나 아프다는 문자는 없다. 사는 게 퍽퍽해 가뭄 든 땅처럼 말라가는데도, 숨이 막혀 가슴이 조여 오는데도 우리는 핸드폰을 들어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못한다. 마주 보고 말하는데 더 익숙하지 전화 통화에는 서툰 것이다. 잘 지내지, 하며 안부 문자를 남기는 게 내가 너에게 또 네가 나에게 전하는 유일한 SOS 신호다.

어떤 일도 진행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애를 쓸수록 일은 더 꼬여만 가고 실패의 상처는 깊어지고 그만큼 삶이 비참해지는 때가 있다. 2016년이 그랬다. 일, 글, 사람, 심지어는 진학 문제까지. 하나가 어그러져 다른 일을 진행시키면 결정적인 순간 어김없이 뒤통수를 맞았다. 손대는 것마다 일그러지는 게 저주를 받은 것만 같았다.

원치 않는 상황에서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의도치 않게 삶을 뜸 들여야 할 때, 그로 인한 기다림을 마주해야 할 때, 마음에 병이 난다는 것을 알았다. 생각해보니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게 인생이라는 말이 올가미가 되는 상황을 맞닥뜨려 본 적이 없었다. 의지와 삶이 물과 기름처럼 갈라져 있는 인생이 어떤 것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엇나가는 인생을 붙들고 갈팡질팡하고 있던 그때, 몇 년 만에 너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잘 지내지, 하고.

목까지 차오른 숨을 어딘가에는 내려놓아야 할 것 같았다.

온몸에 쥐가 날 정도의 두려움과 막막함을 마주하며 걷고 있던 그날 밤, 네 답을 받았다.

아기 때문에 답이 늦었다고. 뭘 하건 응원한다고, 잘하고 있으리라 믿는다고.

눈물이 핑 돌았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 한마디가 필요했다. 조언의 탈을 쓴 조악한 말이 아니라 마음이 담긴 따뜻한 다독임이 필요했다. 너와 내가 알고 지낸 세월의 힘인지, 내가 꼭 나 같은 사람에게만 마음을 줘서인지, 내 속을 들여다본 듯 너는 내가 내게 건네지 못한 말을 전해주었다.

누런 은행잎이 세상을 물들이고 있던 완연한 가을, 바스락 거리는 나뭇잎 소리가 귀를 울렸다. 무르익은 들판 같은 네 한 마디가 얼어붙어 가는 내 가슴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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