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래치

Black

by Lunar G

색색의 크레파스를 골라 쓰던 때와 다른 마음으로 손을 움직이고 있다. 알록달록 채색한 도화지 위에 덧칠하는 검은 크레파스. 누군가의 눈에는 이 검은색이 실패를 인정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까만 그림을 망친 그림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 역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며 나를 다독인다. 모든 걸 덮어야 하는 이 과정이 예견되어 있었다는 걸 모르지 않았으니까. 밭을 갈아엎듯 지금까지의 시간을 무(無)로 만들어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안고 살아왔으니까.

주어진 길이 아닌, 소망하는 길을 걷기로 마음먹은 순간 본능적으로 알았다. 마음대로 되는 것보다는 어긋나고 빗나가는 게 더 많을 거라는 것을. 그럼에도 고집했다. 그 하나를 놓으면 나로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기에. 존재의 이유를 잃을 것 같았기에.

실패가 두려웠다면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예상했던 일인데 검은색으로 모든 걸 덮고 있자니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내보인 적 없는 기록들이, 끊임없이 뇌를 돌리는 뭔가가, 길이를 가늠해 본 적 없는 배움의 시간이, 나누고 싶었던 마음이 전부 재가 되어 사라지는 것 같다. 정말 이게 끝일까. 인생이 이토록 시시한 것이었을까. 자존감 하나로 버텼는데 앞이 보이지 않으니 나도 모르게 믿음이 흔들린다.

Paul Klee_Pavillion.jpg Paul Klee_Pavillion

초등학생 시절 그린 그림 중 스크래치 기법으로 그린 작품이 있다. 그리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검은색을 제외한 색으로 도화지를 채운 후 그 위에 검은색을 덧칠한다. 그런 다음 끝이 뾰족한 펜이나 송곳으로 그 위에 그림을 그린다. 그러면 검은 도화지 같던 종이에 그림이 나타난다. 말하자면 검은색을 칠해야만 완성할 수 있는 작품이 스크래치 작품인 것이다.

십 년의 미국 생활, 십 년의 교사 생활, 십 년의 회사 생활, 십 년의 준비, 십 년의 육아. 저마다의 사연으로 우리의 오늘은 예전에는 보지 못한 어둠에 가려져 있다. 어느 날부터인가 색색의 크레파스로 미래를 그릴 그때는 예상 못한 어둠이 더해지더니 지금은 그때 우리가 그렸던 그림이 무엇이었는지도 가물가물해져 있다. 검은 도화지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한다. 지금은 검은색을 칠하고 있지만 때가 되면 뭔가를 손에 쥐고 크레파스를 벗겨내고 있을 거라고.

흰 도화지를 밑바탕으로 그린 그림과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청춘이 남긴 그림과 시간이 선사한 어둠을 배경으로 한 그림 나름의 멋은 배어나고 있을 것이다. 어둠 뒤에 자리 잡고 있을 뿐, 실패한 그림이 아니다. 바탕색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 망쳤다 생각한 그림 위에 색을 더해가며 재탄생의 시간을 관통하고 있는 것뿐이다.

우연과 의지, 세월이 빚어낼 그림은 어떤 모습일지. 내가 너에게, 네가 나에게 선사할 그림을 기대하며 검은 크레파스를 손에 쥔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완연한 가을, 노란 응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