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빛 상실

Navy

by Lunar G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치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정지용 시인의 ‘유리창’이다. 이 시를 떠올리면 Eric Clapton의 Tears in Heaven이 연상된다. 아들을 잃고 하늘의 문을 두드리는 가수와 죽은 아들을 그리며 홀로 유리창을 닦는 시인. 떠나보낸 이를 향한 상실의 아픔을 새겼을 두 사람. 그 아픔을 마주하고 있자면 ‘아비’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입 밖으로 ‘아비’를 소리 내 말해본다. 두 자(字)에 담긴 울림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남겨지는 일과 떠나 오는 일. 이별은 살아가는 게 이토록 잔인한 일인가, 산다는 게 가슴이 녹아내리도록 아픔에 무던해져야 하는 것이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남긴다. 그러면 서글픔이 몰려온다. 목이 멘다.


두 아이를 남기고 간 젊은 아비가 있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눈시울이 붉어지는 그 아비를 나는 사촌오빠라 불렀다. 나와 열 살도 더 차이나는 오빠는 낚시를, 바다를 그리고 사람을 좋아했었다. 주말이면 사촌들을 차에 싣고 바다로 달리곤 했던 오빠. 문지방이 닿도록 많은 친구들이 찾아왔던 오빠. 세상 누구보다 다정한 아빠였던 오빠.

상처가 많았던 만큼 오빠가 오래오래 행복하기를 바랐다. 아니, 누구보다 선한 사람이었으니 언제 어디서도 행복할 거라고 믿었다. 어릴 때처럼 뛰놀 수 없을 나이가 되고 연락이 뜸해지고. 그렇게 꽤 긴 시간을 보냈다. 어른이 되는 게 무던해지는 것과 동의어라는 것을 알아가고 있을 즈음 오빠의 안부를 전해 들었다. 잘 지내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영원히 누군가의 아빠였으면 했던 오빠가 이른 이별 고해왔다. 그렇게 서둘러 가지 않아도 되는데. 더는 오빠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아비라 불리기엔 너무 이른 나이, 오빠는 그 자신보다 더 아꼈던 아이들을 남기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오빠는 그렇게 아비가 되었다. 남겨진 초등학생 아들과 고등학생 딸은 남들보다 빨리 아비를 가슴에 담았다.


남겨진 아비와 떠난 아비.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히는 창’에 상실의 쪽빛을 겹쳐본다. 한 해 전라도 땅 어딘가에서 만난 어스름 저녁 남색 하늘을 보며 내뱉은 말을 읊조린다.

길이........ 너무 멀다. 생이 너무 서럽다.


아비를 잃은 혹은 아비가 되어 남겨진 이들의 노크소리가 어딘가에는 닿기를. 상실이 아닌 추억으로 아비들의 가슴이 더 이상 멍들지 않기를.


Emil Nolde_Little Streamer_1910.jpg Emil Nolde_Little Steamer_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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