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일요일 오후, 오페라 관람을 위해 여수를 찾는다. 지인의 지인들이 무대에 오르는 전국 투어 콘서트다. ‘풍자와 해학’이라는 이름 아래 모차르트와 베르디의 작품이 불려 나온다. 제목은 제목대로 무대는 무대대로 멋스러웠던 공연, 대중적인 곡이 두 시간을 빼곡하게 채운다.
해가 남아 있는 공연장 밖, 바람이 공연 관람을 마치고 나온 우리를 맞아준다. 봄바람이 분다. 양귀비가 하늘거린다. 악기와 목소리로 담아내지 못한 선율이 귀를 두드리고 들어온다. 바람의 매만짐에 머리카락이 기분 좋게 흩날린다. 나른한 일요일, 무대와 객석이라는 한 배를 탔던 이들이 한 곳을 바라보고 섰다. 관객과 연주자들의 시선이 수렴하는 곳, 그곳에 바다가 있다.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하얀 하늘과 하늘을 마주 보고 있는 푸른 바다. 같은 시간 같은 곳을 공유했던 우리는 바다를 통해 다시 그렇게 서로에게 닿는다.
파란색이라 하기도 하늘색이라 하기도 애매한 푸름. 한 줌의 채도와 한 줌의 명도가 아쉬운 바다. 엷은 푸름을 앞두고 눈을 깜빡인다. 설렘인지 두려움인지 모를 떨림이, 투명한 푸르름이 가슴을 적신다. 바람이 누군가의 아픔과 누군가의 상실과 누군가의 고뇌를 쓸고 간다. 그러더니 무심히 한 마디를 놓아준다.
쉬어가자.
여수 예울 마루에 들어서기 전, 이순신 대교를 앞두고 누군가 그랬었다. 쉬어가자고. 콘크리트로 만든 무지개 같은 대교를 건너 차를 세우고 봄볕을 맞았다. 봄 햇살에 숨을 내려놓았다. 내려놓고서야 알았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생각했다. 잠시 쉬어가도 좋다고. 달릴 일 많은 날들을 위해 숨 터 하나 남겨두고 가도 괜찮다고.
눈앞의 이순신 대교를 물리고 바다를 눈에 담는다. 해가 넘어가고 있다. 하늘이 어둠을 더해가고 있다. 트임이 남긴 속삭임을 듣는다. 색과 농도는 때에 맞춰 더해 가면 된다. 눈이 시리도록 투명한 푸르름은 그 순간이 아니면 다시 만날 수 없다. 조금 시려도 괜찮다. 그게 나만의 푸르름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면 그래도 된다.
아픔이건 행복이건 삶 그 자체이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한 꺼풀 더 짙어지고 두터워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예울마루 벽을 채우고 있던 최선호 작가의 그림 <에베레스트>처럼 오늘의 푸르름을 바탕으로 농밀한 푸름을 뱉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쉬어가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