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en
내가 널 부르는 애칭 때문일까.
오래전부터 너는 내게 나뭇잎이었다. 오늘도 문자를 보내다가 눈앞에 나뭇잎을 불러냈다. 처음 만난 게 십몇 년 전이었는데 아직도 나뭇잎을 떠올리다니, 네 이름이 남긴 첫인상이 깊이 새겨졌던가 보다. 사람이 이름을 닮아가는 건지 이름이 사람을 담아내는 건지 너는 내게 푸른 잎이 되어 있다. 적당한 날렵함과 유연함을 가진, 녹음이 딱 들어맞는 새파란 잎 말이다.
쉬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몸에 이상 증상이 나타나 병원을 찾으니 쉬는 게 좋다고 했다지. 그래, 숨 돌릴 때도 되었다. 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취업했으니 근 십 년 동안 쉬지 않고 달려온 셈이다. 평생을 일해 온 우리네 부모님들이나 일자리가 절실한 이십 대에게는 배부른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휴식이 꼭 일정 노동시간을 전제로 해야 하는 건 아닌 바, 쉰다는 네 말이 나한테는 어째 반갑게 들린다. 일을 잘 할수록 더 많은 일을 주는 시대니, 참고 있는 걸 알아주지도 않는 세상이니 숨 고르기가 필요할 때 쉬어가는 게 맞다.
무난한 인생이 어디 있겠냐만 내 눈에 네 인생은 순항 중인 배처럼 보였다. 방황과 아픔, 슬픔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를 덤덤히 받아낼 줄 아는 너이니 언제 어디서건 굳건하리라 믿었다. 단단한 너였기에 상처받는 일도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휴직을 한 이유를 들었다. 이변과 시련으로 다져졌다고 자신하는 내가 고개를 끄덕일만한 일들이 귀를 지나갔다.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당황스러운 시간을 지나오며 너는 생각했다. 쉬면 된다고. 휴직이라는 카드를 꺼내면 된다고. 너는 지금 처음으로 긴 휴가를 가지고 있다. 쉬기로 한 네 결정을 응원한다. 이른 취업과 안정된 직업만큼 축복받은 미래는 없다지만, 뜸 들일 틈도 없이 곧바로 직업을 가진 너였으니 일이 년쯤은 휴가를 내도 괜찮다.
넘어지면 쉬어가면 된다.
사는데 치여 있었던 우리에게는 인생을 쉬어갈 수도 있다는 개념이 없었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기를 쓰며 버텼고,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 달리기에 바빴다. 누가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 부단히도 애쓰고 살았다. 어디 우리뿐일까. 버티기에 단련된 이들 모두가 오늘도 쉼 없이 달리고 있을 것이다. 어디로 가는지, 왜 버텨야 하는지 모른 채 뒤쳐질지 모른다는 불안에 사로잡힌 채.
숨 좀 돌리고 가자. 대단한 일을 한 사람에게만 쉴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는 건 아니니 멈춰서 보자. 쉬고 있다는 죄책감 없이, 밀려난다는 두려움 없이, 턱까지 차오른 숨을 뱉어 보자. 가을이 오기도 전에 푸른 잎이 바닥에 떨어져 버리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