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ple
가슴에 남은 보라색이 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서늘하고 싸한 느낌의 푸르고 붉은빛이 떠오른다.
부모님 손을 잡고 인파로 가득한 거리를 걷고 있던 어느 날, 거리의 네온사인이 더없이 신기해 보였던 저녁, 고등학생 즈음으로 보이는 한 소녀를 마주친 적이 있다. 헝클어진 머리와 초점 없는 눈, 허름한 옷. 걷고 있는 것 같은데 자는 것 같은 눈. 나와 시선이 마주쳤는데도 나를 의식하지 못하는 눈. 그 불균형이 불편했다.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말에 가슴이 갑갑해졌다. 뭐라고 말을 하고 싶은데 적당한 표현을 찾을 수 없어 엄마 다리 뒤에 숨어 소녀를 훔쳐보았다. 그러다가 다시 소녀와 눈이 정통으로 마주쳤다. 그런데도 소녀는 내가 그녀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눈은 분명 나를 향해 있지만 그 눈에 맺혀 있는 건 내가 아니었다. 그런 빈 눈을 본 건 처음이었다. 무서웠다. 엄마를 올려다보았다.
엄마가 내 눈을 가리며 말했다.
보지 마.
그게 내겐 그 소녀가 있는 곳은 네가 사는 곳과는 다른 데라는 말처럼 들렸다. 심장이 뛰었다. 소녀를 향한 일그러진 얼굴들과 혀 차는 소리와 손가락질과 고함소리. 가슴이 두근거리고 두려움이 일었다. 그 낯선 풍경이 파고들 수 없는 집으로 한 시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울음을 터뜨렸다. 그날의 외출은 그렇게 거기서 끝이 났다.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는데도 소녀의 여운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소녀를 향한 혐오의 시선과 배실 거리는 소녀의 입가, 흐리멍덩한 눈과 소녀를 그렇게 취급해도 된다는 듯했던 욕설들. 사람이 아닌, 쓰레기를 보는 듯했던 행인들의 눈이 슬프게 느껴졌다.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코너로 몰아세우던 그 장면이 꽤 오래 상처가 되어 남아있었다. 긴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말짱한 정신을 몽롱하게 만드는 주사가 있다는 것을. 그녀의 팔다리에 남겨진 멍이 환각을 불러일으키는 약물을 놓은 주사자국이었다는 것을. 바늘을 너무 많이 찔러 온 몸이 보라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는 것을. 사람들은 금기를 위반하는 자를 쓰레기로 취급한다는 것을.
그날을 떠올리면 괜스레 삶이 서글프게 느껴진다. 그래서 상식을 넘어선 선택을 하고, 인간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르고, 보통의 사람들이 납득할 수 없는 일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습관처럼 묻게 된다. 왜 그랬을까 하고. 그런 다음에 엄습해오는 분노, 상실감, 갑갑함 이면의 슬픔을 문지르며 생각한다. 그날 그녀의 몸에 남겨진 멍이, 이 사회 구석구석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가해한 일들이 어쩌면 이 사회의 상처일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