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ange
겨울 찬바람이 드문드문 불어대는 봄날 오후, 연주회장을 찾는다. 백여 석이 조금 넘는 공연장은 사람들로 만원이다. 이번이 세 번째 참석하는 그녀의 연주회다. 관객의 호흡소리까지 생생히 전해질만큼 밀착감이 감도는 연주회장, 드레스를 입은 그녀가 등장한다. 작곡가와 연주회 취지가 소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연주가 시작된다.
어떤 음반도 공연장에서 직접 듣는 음악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 공연장에는 연주자의 호흡, 관객들의 숨죽임, 악기의 떨림, 그리고 살아있는 공기의 울림이 있기 때문이다. 같은 시간 한 공간을 공유하는 이들로서 느끼는 공감대, 그것은 음반에 담아낼 수가 없는 것이다.
바이올린이 울고 피아노가 달리고 관객의 숨소리가 공연장을 채운다. 글룩의 곡이 귀를 지나가더니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이 이어진다. 공연장을 찾아오는 길에 본 간질거리는 봄이 움을 틔운다. 묵은 상처에 이별을 고하듯 유독 꽃을 많이 찾아 나섰던 2016년 봄, 어둑어둑했던 공연장 안에도 봄이 깃든다. 작곡하는 친구와 연주하는 친구가 만들어낸 어우러짐을 거쳐 한 땀 한 땀 공들여 놓은 자수 같은 ‘섬 집 아기’를 듣는다. 비올라가 켜내는 ‘섬 집 아기’를 듣는데 영문을 알 수 없이 눈시울이 붉어진다.
등이 촉촉하게 젖어올 정도로 몰입해서 본 공연, 사흘에 한 번 추위가 오고 열흘에 한 번 비가 내리는 봄 같지 않은 봄을 향해, 떠나지 않으려는 겨울을 향해 ‘섬 집 아기’가 손을 내민다. ‘고생 많았다, 겨울아. 더디 오느라 많이 기다렸구나, 봄아.’하고. 2017년 4월, 어느 때보다 시린 가을 겨울을 거쳐 오며 잃어버린 온기를 손에 쥔다. 소중한 이들과 함께 까마득히 멀어 보였던 봄을 맞는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은 농무(濃霧) 같은 시간을 지나오는 동안 우리가 필요로 했던 것은 대단한 무엇이 아니었다. 우리에겐 한 줌의 온기, 한 번의 어루만짐, 한 마디의 따뜻한 말이 필요했다. 그녀가 건넨 손이 더없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봄밤이다. 버스 정류장 가로등이 어느 때 보다 더 곱게 느껴지는 발그레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