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ple
보랏빛 크리스마스.
겨울은 상실, 허무, 고독을 실어온다. 찬바람이 불면 불씨로 남은 기억들이 연기를 피워 올린다. 아픔 또는 추억 새겨진 시간이 하나 둘 불려 나오면 창밖을 보며 얼어붙은 듯 앉아있다. 회색 나무들을 보며 이 동결된 시간을 거치면 또 한 해가 지나있겠구나, 삶은 그만큼 더 쓸쓸해지겠구나, 속살은 물러지고 겉살은 단단해지겠구나 하는 생각들을 한다.
겨울은 그런 계절이다. 지난날의 나에게 이별을 고하는.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십이월에서 일월에 거쳐 있을 동안의 내 OST는 Across the Universe다. 노래하는 시인으로 불리는 가수의 선두 주자라 할 수 있는 Beatles의 <No One's Gonna Change Our World> 앨범에서 수록되었던 곡이다. 즐겨 듣는 버전은 미국 가수 Fiona Apple 버전이다. 조붓한 속삭임 같은 노래가 한 해 동안 긁히고 찍히고 멍든 곳을 매만져 주는 것 같아 겨울이면 꼭 이 곡을 듣게 된다.
올해는 겨울이 빨리 왔는지 붉은 겨울을 맞는다. 사방 온통 붉은 가을을 응시하며 올 한 해의 도전과 실패와 만남과 이별을 곱씹는다. 앞길은 멀어 보이는데 지나온 길을 짧게만 느껴진다. 그만큼 시간을 영글게 사용하지 못했음이겠지. 같은 실수, 같은 고민을 반복하며 이상과 다른 삶을 꾸려왔음이겠지.
퍼런 입술, 퍼런 무릎, 파랗게 질린 얼굴을 보며 생각한다. 언제쯤 한숨 돌릴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넘어져야 사는 데 유연해질 수 있을까. 얼마나 꺾여야 고개 숙일 수 있을까. Fiona Apple이 귓속말을 하듯 속삭인다. Jai Guru Deva(깨우침을 주소서)라고. 순간의 기쁨에 들뜨고 순간의 슬픔에 낙담하는, 사물에 외연 해질 수 없는, 일희일비의 무지한 내게 Beatles가 읊조린다. Nothings gonna change my world라고.
그래, 그 무엇도 내 삶을 바꿀 수 없겠지. 내 삶은 오롯이 내 것이니까. 상처투성이에 실수로 점철되어 있더라도 내가 관통해온 시간은 온전히 내 것이다. 내가 되어 내 삶을 살아보지 않은 누군가가 던진 한 마디에 주변의 평가 때문에, 내가 쌓아온 이 성을 뭉개지 말아야지. 내 것도 네 것도 아닌 유령 같은 삶을 붙들고 눈물 흘리지 말아야지. 나의 너에게 너를 해하는 말을 던지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지.
Nothings gonna change my world 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