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붉히다

Red

by Lunar G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발그레 달아오른 볼을 문지른다.

자주 너와의 대화에 기분이 상한다. 너는 늘 나를 내려다보고 싶어 한다. 내 현실을 꼬집는 질척거리는 말을 뱉으며, 내가 끝내 뱉지 않을 어떤 말을 듣고 싶어 한다. 그래, 지극히 상식적인 선택을 한 네 눈에 나는 불안하고 불완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그렇지 않다, 나이도 생각해야 한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과 같은 무미건조한 말이 귀를 지나간다. 고민이 있다며 만나자고 한 건 너인데 왜 네가 내 고민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나를 아껴주는 네 마음은 더없이 고맙다. 하지만 그 우려가 나를 흔들 정도로 나는 나약하지 않다. 이십 대 초반의 질풍노도 시기에도 그랬고 십 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네 말대로 나는 누군가의 시선보다 내가 나를 보는 눈이 더 중요한 사람이다.

계획대로 일이 진척되지 않은지 오래, 꽤 긴 시간 투명인간 취급을 당했다. 동종 계열 누군가는 나를 애송이 취급했고 나와 다른 길을 가고 있는 몇몇 친구들은 나를 현실감 없는 몽상가로 여겼다. 불쌍하거나 철없다는 시선에 아파했던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성가시게 느껴진다. 내 기준에 맞는 삶을 꾸리기에 벅차 남의 눈에 상처받고 머뭇거릴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도 너는 나를 불러내 푸념 섞인 훈수를 늘어놓는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어제까지 지옥 같다고 했던 네 삶을 자랑한다. ‘부럽다’라던가 ‘좋겠네요’ 같은 말을 건네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네 말대로 충분히 여유로운 인생이고 거기까지 가기 위해 네가 노력했다는 것은 높이 산다. 하지만 나는 네가 부럽지 않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선호하는 직업을 가지고 세상이 정해놓은 방식대로 사는 게 내 인생관과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 길보다 더 빨리 도착할 수 있는 다른 길을 몰라서 가지 않았던 게 아니다. 아사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위태로운 미래를 지고 가야 할지라도 사명을 다해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선택한 일이다. 직업을 결정하는 데 있어 나에게는 정명의식이 무엇보다 더 중요했다. 좋은 신붓감이나 안정적인 직업과 거리가 멀고 내 노력이 정규적으로 정산되지 않는다 해도 나를 잃을 선택을 할 수는 없었다. 네가 너의 방식으로 삶을 일구어 가듯 나는 나로서 사는 삶을 걸어가고 있다.


이해가 아닌 오해를 전제한 대화, 입을 닫는다. 저급한 대화에 더는 말을 보태고 싶지 않다. 왜 네가 내 미래를 설계하는지 모른 채, 어른인 척하고 싶어 하는 네 말을 무감각하게 듣는다. 대화를 나누는 것도 수다를 떠는 것도 아닌, 말의 교환. 피곤하다. 그래서 다른 화두를 던진다.

쉰다는 게 뭔지 잘 모르겠다고.

똑같은 질문에 시를 쓰는 친구는 그럴 거야, 했다. 퇴사 후 쉬어가고 있는 다른 친구는 자야지, 했다. 나를 가까이서 지켜봐 온 친구는 그 길에 들어선 이상 쉴 수 없을 거야, 했다.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나보다 더 잘 아는 친구들의 대답은 그랬다. 친구들 말에서 인풋과 아웃풋이 직결되어야 하는 세상의 방식을 벗어나 있는 내가 그럼에도 뭔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내 일상을 듣고 있던 네가 말한다. 너 참 생산적으로 노는구나,라고.

손과 등이 굽고 장이 꼬이고 모니터 화면 빛에 눈물을 쏟아내야 하는 내 일을 너는 놀이라 한다. 얼굴이 달아오른다. 출퇴근을 반복하며 하루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삶과 해야 할 일을 정하고 그에 맞춰 일상을 꾸리는 삶. 내 눈에는 오히려 네가 유급으로 노는 것 같은데 너는 아닌가 보다. 놀이가 이런 거라면 평생 놀 생각은 하지 않을 것 같은데. 네가 말하는 그게 일이라면 나도 놀 듯 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열이 치미는지 모르는 채 화끈거리는 볼을 문지른다. 손으로 열을 덜 어내며 생각한다.

일을 낭비하는 사람은 되지 말자고.


Marie Laurencin_Portrait of Mademoiselle Chanel.jpg Marie Laurencin_Portrait of Mademoiselle Chanel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바다는 하얗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