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
멀리 있는 친구 아들 양말을 사다 부친다.
흔하디 흔하다는 양말을 봉투에 넣고 우체국에 찾아가서는 주소를 적고 요금을 지불하고. 예전에는 참 많이도 우체국을 찾았었는데 생각해보니 최근 10년 동안 우체국을 찾은 건 공모전 원고를 보낼 때뿐이었다. 별스럽지 않은 양말을 부치고는 괜스레 혼자 들뜬다. 이 아무것도 아닌 소소함이 얼마 만인지. 간만의 여유 시간을 어떻게 할까 하다가 인문학 강의를 들으러 간다. 이렇게 가만 앉아 강의를 듣고만 있는 게 얼마 만인지. 그렇게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아득한 옛일 같다. 강의를 들으며 생각을 정리하고 적어나가야 할 것들을 써 내려가 보고. 처음 보는 강사가 들려주는 낯선 나라 이야기에 설레기도 하고. 일상처럼 누리던 것들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걸 실감하며 익숙했던 어딘가에서 벗어나 있나 보다 한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정갈하게 정리된 정원을 걸어 나온다. 어디로 갈까, 이러고 망설이고 있는 것조차 소중하게 느껴지는 걸 보니 빡빡하게 살긴 했구나 싶다. 괜찮은 분위기의 카페를 찾아 들어간다. 빨간 장미로 하얀 벽을 장식한 카페에 앉아 주문해 둔 책을 편다. 딱딱한 문체의 건조한 책이 아닌, 감수성이 묻어나고 사람 사는 이야기가 담긴 책을 들고 앉아있자니 눈시울이 붉어진다. 이러고 좋아하는 책 한 권 들고 앉아 있는 게 참 감사한 일이었구나 한다.
커피 한 잔, 케이크 한 입. 카페로 들어오는 빨간 구두를 신은 여자.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장미가 만발하는 5월에는 생각지도 못한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서인지, 뭐라도 웃을 일이 생겼으면 해서인지. 사소함의 충만을, 소소함의 행복을, 일상의 충전을 새삼 감사하게 되는 하루다.
빨간 구두, 빨간 장미, 빨간 조명, 빨간 노을, 빨간 사과.
발그레 달아오른 볼처럼 설렘 가득한 5월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