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것 같은 몸으로 검은 밤을 마주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베개도 이불도 잠옷도 느껴지지 않고 어둠과 나밖에 남겨지지 않은 것 같았던 까만 밤, 그런 밤이면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않는 인생을 붙들고 목놓아 울다가 눈을 감곤 했다. 그렇게 침대에 누워 있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눈이 뜨였다. 한 시간이나 잤을까. 나는 또다시 까마득한 어둠 속에 놓였다.
모든 사물이 명확하게 잘 보이는 빛 속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이 같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막막함은 가슴을 옥죄고, 그 길로 들어선 내 선택은 나를 옭아매고, 내 맘과 다른 세상은 야속하게만 느껴지고. 미몽의 상태로 박제된 듯한 삶이 칠칠치도 못하면서 고집만 내세워 그런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앞을 보고 있는 것인지 뒤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것인지 몰랐던 그때, 내가 절실하게 필요로 했던 것은 한 줄기 빛이었다.
그 빛을 따라 마그리트(René Magritte)의 그림 <L'Empire des Lumières> 속으로 들어간다. 파란 하늘 아래 집과 나무가 검은 형상이 되어 놓여 있다. 하늘은 빛을 품고 있고 집과 나무는 어둠에 둘러싸여 있다. 낮인데 밤이고 밤인데 낮이다. ‘빛의 제국’이라는 제목을 단 마그리트의 그림에서 군중 속 고독을 본다. 나를 둘러싼 모든 이들이 웃고 있는데 홀로 상념에 잠겨 있을 때의 고적함. 사람이 그토록 많은데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이가 한 명도 없을 때 느끼는 질식할 듯한 갑갑함. 나도 여기에 서 있다고 소리치고 싶은데 목이 메 말이 나오지 않을 때의 막막함. <L'Empire des Lumières> 속에 그 모든 것이 들어있다.
빛은 어둠을 배경으로 산란한다. 어둠이 있기에 빛은 비로소 빛이 될 수 있다. 마그리트가 말한 ‘빛의 제국’은 어둠을 배경으로 하기에 제국으로 설 수 있다. 가면을 쓰고 나간 어느 자리에서 군중 속 고독을 느끼며 터덜터덜 돌아온 집. 불은 꺼져있고 날은 저물었고 나를 기다려주는 이는 없다. 해가 비치고 있는 저 세상에는 내 자리가 없고 내가 기거하는 어둠이 든 집에는 나를 맞아주는 이가 없다. 빛의 세상을 부유하면 어둠 속에서도 쉬어갈 수 없는 것일까. 진정 이 세계에 내가 마음 놓고 숨 쉴 수 있는 공간은 없는 것일까.
찰칵.
그림에 불이 들어온다. 마그리트가 빛 한 점을 선사한다. 저 너머 세상의 초라한 나를 지켜보고 있었노라고, 길 잃은 나를 위해 불을 꺼트리지 않고 있었노라고, 내내 불을 밝혀두고 이 빛이 내게 닿기를 기도하고 있었노라고 말을 걸어온다. 그랬다. 어둠 속에서 내가 찾아 헤맨 것은 화려한 빛이 아니었다. 살아갈수록 더 흐릿해지는 듯한 내 존재감을 각인시켜 주는 은은한 빛. 목을 빼 나를 기다리는 이가 있음을 알려오는 한 조각 빛. 어둠을 어둠이게 하고 밝음을 밝음이게 만들어주는 엷은 빛.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마저 잊어가던 내가 필요로 했던 것은 그런 빛이었다. 침을 고이게 하는 귀한 빛 한 점을 머금은 채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에서 읽어낸 말을 가슴에 되새긴다.
기다림은 빛이다. 빛은 기다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