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이 짙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 곁이 있지 않아도 존재감이 확실한 사람이기를 희망한다. 믿음을 주는 존재이었으면 한다. 대체 불가능한 매력을 가진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나눌 수 있는 게 많은 사람이면 좋겠다. 가까이하고 싶지만 쉽지만은 않은 사람이면 좋겠다. 멋스러운 줏대를 가진 사람이면 좋겠다. 품이 너른 사람이고 싶다. 웃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나만의 빛을 품은 사람이면 좋겠다. 이 모든 걸 집약해 표현하려니 한 마디가 떠오른다. 나는 당신에게 스며들고 싶다. 내 삶이, 내 무던함이, 우공이산 같은 내 둔함이 당신을 그리고 나를 감화시키면 좋겠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내 의지로 인생을 원하는 방향으로 끌어갈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시절, 걸음마다 소신이 새겨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었다. 그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매 순간 나를 살피고 스스로의 나약함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말과 행동이 합치되는 사람, 글과 삶이 하나인 사람, 앞말과 뒷말이 다르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이 그토록 힘든 일인지 그때는 몰랐다.
내뱉은 말을 지키고, 헛된 말은 하지 않고, 자신 없는 일은 확신하지 않아야 한다는 상식이 하나둘 깨지고 상처도 그만큼 늘어나고. 그렇게 나는 어른이 되어갔다. 아니, 성장을 했다기보다는 나이를 더해갔다는 게 어쩌면 더 적절한 표현이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이해력이 늘어간다는 것과 동의어였다. 살아온 날이 늘어갈수록 사람들이 왜 일그러진 말로 벽을 세우는지, 가시 박힌 언어로 타인을 찔러대는지, 상식 밖의 행동으로 속을 뒤집는지 해독할 수 있게 되었다.
말대로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된 지금, 고집쟁이인 나를 움직이게 한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찬찬히 뜯어본다. 인생의 변곡점에서 만난 이들의 얼굴이 눈앞을 지나간다. 유약해진 마음을 다잡아주고, 소신을 지키는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해 준 그들은 세상이 뭉개버린 상식을 굳건히 지켜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늦어지더라도 반드시 약속은 지키는 사람, 자신할 수 없는 일은 섣불리 입 밖으로 내뱉지 않는 사람, 말과 행동이 하나인 사람, 공적에 초연한 사람, 소신 있게 자신의 방향을 고수해 나가는 사람, 삶의 결이 한결같이 고운 사람이었다. 그들은 몸에 스민 습관을 상황에 맞춰 뱉어낼 뿐, 자신들의 행적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무엇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행하는 그 자체가, 마음을 다하는 그것이 곧 삶의 태도로 굳혀진 그들의 진중하면서도 민첩한 움직임은 나를 감화시키기에 충분했다. 일관되게 인생을 꾸려온 그들의 생을 마주할 때마다 생각했다.
내 힘으로 곧게 서고 싶다.
스밈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삶이 깊은 울림이 되어 전해지면 좋겠다.
내가 걸어온 길이 티끌 한 점 없이 말끔한 모습으로 남겨지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휘슬러(James McNeill Whistler)의 작품들을 떠올렸다. 붓을 든 그 순간의 공기 입자까지 캔버스에 담아낸 휘슬러의 붓 터치를 보고 있자면 스며든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테두리를 찾아보기 힘든 휘슬러의 그림 속 상은 아이러니하게도 보면 볼수록 더 선명해졌고, 풍경은 그 깊이를 더해갔으며, 화면은 경계를 지워냈다. 붓과 캔버스와 풍경과 화가의 하나 됨. 이를 두고 물아일체라고 하리라.
삶을 통해 나를 감화시킨 그들의 인생에서 휘슬러를 읽고 물아일체의 경지를 본다. 어긋남 없는 그들의 일관성을 가슴에 새기며 마음을 다진다.
소신을 가질 것
주관을 구체화할 것
혜안을 넓혀나갈 것
말과 행함을 일치시킬 것
글과 삶을 하나로 만들어갈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