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코(Théodore Géricault)가 그린 <La Balsa de la Medusa>이다. 이 그림은 실재했던 사건을 재현해 낸 것으로 생존자와의 인터뷰와 뗏목 제작 등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 작품이다. 정치한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제리코는 밀랍으로 모형을 만들고 썩어가는 사체의 색을 살피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림 속 상은 보도된 실제 사건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제리코는 없었던 사건이 되었던 ‘메두사호의 난파’의 조명을 젊은 혈기로 세세히 그려내고 있다. 이 그림이 주는 울림 때문일까. 낭만주의의 기수니 뭐니 하는 수식어 이전에 제리코 하면 가장 먼저 이 그림이 떠올리게 된다.
1816년 7월 2일, 해군 군함 메두사호가 난파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세네갈을 식민지로 삼기 위해 나선 길이였다. 선장을 비롯한 몇몇 사람을 제외한 백오십여 명의 승객은 뗏목에 오른다. 이후 13일간의 표류가 시작된다. 살아남아 구조된 사람은 열다섯 명이었다. 이후 메두사호의 난파가 왕당파의 무능과 무관하지 않았던바, 사건은 수면 아래로 사라지고 만다. 바다 위에서 버틴 이들의 생존기는 일어나지도 않은 사건이 되어 묻혔다가 생존자 중 한 명인 외과 의사의 출간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질병, 폭력, 폭동, 기아, 탈수 그리고 식인까지 난무하는 지옥 같은 뗏목에서의 생생한 증언은 여론을 들끓게 한다.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산 자들을 태운 뗏목을 끊어내고, 태양과 바닷물에 말라가고, 식량 부족으로 환각이 일고, 그로 인해 인육까지 먹어야 했던 아귀 지옥의 뗏목 위. 인재임이 분명한 이 사건에 오늘의 한국이 겹쳐 보이는 이유는 뭘까.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남편이 아내를 죽이고,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이유 없이 타인을 향해 칼을 휘두르고, 멋대로 타인을 비방하고, 사체를 매장하고, 인육을 먹기도 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 오늘의 한국이 표류하는 뗏목과 무엇이 다를까. 살아남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살아남느냐가 아닐까. 먹거리가 갈급한 시대도 아닌데, 어떻게 건 물리적으로는 먹고살 수는 있는데, 허기에 인육을 먹어야 하는 처지에 있는 것도 아닌 우리가 왜 타인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하는 광기에 들떠 있는가.
메두사호의 뗏목을 보며 자문해 본다.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떤 삶을 남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