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ple
이 시간까지 왜 이걸 붙들고 있는 건지. 세상사 이유를 알 수 있는 게 몇이나 되겠냐만, 시키지도 않은 일을 애써 만들어가는 나를 마주할 때면 지겹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선호하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이 병을 어찌해야 할는지. 타자기를 두드리려면 무위(無爲) 해 보이지만 유위(有爲) 한 일에 익숙해져야 하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낯설어져 간다. 뭔가를 시작할 때가 되었음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주어진 무엇이 있음에 감사해야 하는데 모든 게 낯설고 성가시다. 할 일로 가득 찬 머리와 움직이지 않는 손발이 빚어내는 불균형 사이에서 주리가 틀려간다. 운명에, 세상에 인생을 내맡겨보는 것도 좀 할 줄 알아야 되는데 한 번도 인생이 계획대로,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 덩그러니 내던져진 것 같은 이 상황에서 공포와 불안을 느끼는 이유는 뭔지. 담대해지는 데, 무던해지는 데도 각고의 노력이 있어야 하는 건지. 주어진 것에 순응해가며 의지도 계획도 없이 무결을 타고 가다 보면 뭔가 보이게 되는 건지. 손에 쥐어지는 게 하나도 없을 때는 그때대로 불안하고 분통하더니 뭔가 손에 잡히는 게 있으려니 그건 또 그것대로 신경을 긁는다. 이 바람에, 이 물결에 몸을 맡겨도 되는 건지 확신하지 못하는 건 세상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미덥지 않은 세상에 대면해 상처 받지 않을 자신이 없어서 인지도 모른다. 상처는 아무는 게 자연의 섭리라는 것을 잊어버렸기 때문이겠지. 아물기까지의 시간이 지독히 시리고 길게 느껴졌기 때문이겠지. 흉이 되어 남은 상처가 보이기 때문이겠지. 시간은 갈 것이고 한 해 한 해 더해지는 나이는 새살이 되어 차오를 테지. 세상의 방식에 생을 맡겨보는 것도,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 보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음을 새삼 실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