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서는 한참 동안 눈을 깜빡이고 있다. 그의 모습이 아른거리기 때문이다. 잠들어 있는 그를 잔상을 보며 그의 하루가 평온하기를 기도한다. 같은 침대에서 잠이 들고 먼저 잠에서 깨어 여전히 잠들어 있는 그를 지켜보고 있는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떨어져 있게 된 후에야 실감한다. 그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아 침대 밖으로 나오기 싫었던 아침이 있었는데 그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하는 날들이 분명 있었는데..... 지금은 만져지지도 보이지도 않는 그에 대한 그리움을 품은 채 그와 나의 평온한 하루를 기도하며 아침을 불러들인다. 그렇게 애써 힘을 내 아침을 맞는다. 그러면 어느새 낮에 이르러 있고 그러다 보면 더디게나마 저녁이 와 있다. 당신 없는 하루하루가 그렇게 채워지고 있다.
밤이면 잠이 오지 않는다. 걱정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는데 당신은 정말이지 성실하게 당신의 생존을 알려오고 있는데 당신을 잃은 후 잠들지 못하는 밤이 늘었다. 그런 밤이면 느닷없이 편의점으로 향하게 된다. 편의점에서 쏟아져 내리는 빛을 보고 들어오면 조금 덜 쓸쓸해질 것 같기 때문이다.
어제는 밤늦게 오렌지주스를 사러 편의점에 갔었다. 찬 바람 때문인지 거리가 비어있었다. 겨울바람에 안겨 거리를 걷는 것을 좋아했는데 한동안 그 감각마저 잊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러면서 당신과의 마지막 밤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당신을 만난 후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날 밤이면 밤거리를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고는 했다. 짧은 만남이 아쉬웠기 때문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밤거리는 후쿠오카였다. 밤거리는 비어있었고 당신은 잠들어 있었으며 헤어짐을 앞둔 나는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떠나야 하는 것이 죽을 것처럼 슬퍼지면 잠든 당신을 두고 해변으로 나가 걷다가 돌아왔다. 어둠 속이라 바다는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파도 소리를 들으며 모래사장에 멍하니 앉아 있다 보면 우리의 인연이 감사한 한편 너무 애처롭게 느껴졌다. 소리 내 울며 생각했다. 당신을 깨게 하지 않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찬바람 때문인지 어제는 문득 일본의 수많은 밤거리가 생각났다. 때로는 당신과 함께 때로는 홀로 나는 밤을 걸으며 사랑의 열정을 삭여냈다. 어둠이 짙어 무서울 때도 있지만 아무래도 나는 밤의 고요함이 좋았다. 그 고요 속에 안겨 걷다 보면 우리에게도 평범하게 함께 할 날이 곧 우리에게도 주어질 것 같아서 슬픔을 진정시킬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슬픔의 끝은 늘 눈물에 이르렀다. 서럽게 울 수 있음은 그만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었으니 그때는 그 눈물조차 소중하게 느껴졌다.
당신과 함께 걷는 밤거리를 생각한다. 모두가 잠들고 텅 빈 밤거리는 우리만의 세상이 되어 있다. 밤의 신이 온전히 둘 일 수 있는 비밀의 시간을 만들어 가엾은 우리 두 사람을 지켜주고 있다. 그 속을 당신과 내가 손을 맞잡고 걷는다. 바람은 찬데 춥지가 않다. 당신이 나를 꼭 안아주고 있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 있지만 무섭지가 않다. 당신과 함께이기 때문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참는 것이 쉽지 않음을 매일 실감하고 있으나 홀로인 이 시간을 잘 견디고 있다고 당신에게 전하고 싶다. 나는 다만 당신이 걱정이다. 그리움을 참는 것은 역시나 괴로운 일이니 당신이 너무 힘들지는 않을까 해서 말이다. 당신은 강한 사람이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당신이 강한 만큼 이 사랑도 강하니까 이 사랑이 당신을 괴롭히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다. 사랑은 강한 사람을 한없이 약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티 내고 있지 않을 뿐 당신은 나보다 더 버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보고 싶은 마음을 참는 것은 고문과 다름없으니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분명 의미 있는 시간이겠지. 그래서 죽을 만큼 힘들어도 시간의 문지기가 되어 이 사랑을 그리고 당신을 지켜내려고 한다. 그러니까 당신을 힘들게 해서 정말 미안하지만 당신도 잘 버텨주기를.